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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Aug 31. 2022

몰입감

-이러지 말자, 정말.

나는 어려서부터 몰입을 잘하는 성격이었다. 


내가 먹고사는 직업을 갖게 해 준 영어를 배울 때에도 나는 집착과 몰입을 하곤했다.

같은 노래를 백 번 듣고, 같은 드라마를 백 번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가르치며 살게 되었다.


이런 나의 성격은 살면서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는 연극배우로 잠시 잠깐 지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작은 배역을 맡았어도 그 역할에 몰입하곤 했다. 그래서 끝나고 나서 빈 무대를 보면 허전함이 밀려오곤 했다. 차라리 대단한 주연 배우라도 되었으면 인정이라도 받았을 텐데, 나는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도 끝나고 나면 공허함으로 힘들어했다.

심지어 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랬다. 학기가 끝나고 아이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낼 때 나는 무척 난감할 정도로 허전함이 느껴지곤 했다. 애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가서 여름캠프를 진행해도 마찬가지였다. 끝나고나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고 허전했다.


어렸을 때 내가 책을 많이 읽었던 것도 그런 영향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소설책은 천 번, 만 번을 되풀이해서 보았다. 그 책이 꼭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어도 좋았다. 역사 소설이든, 삼국지나 손자병법이든 아니면 '제인 에어'나 '빙점'같은 소설책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책을 다 읽으면 나는 마음이 빈 것 같았다.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책을 집어들어 읽으며 주인공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세세한 상황들까지 확인하곤 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다면 그에 관련된 서적이나 영화나 드라마는 모두 찾아보면서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다. 가끔 굉장히 몰입하게 되는 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다시 보고 또 보면서 그 드라마 속에서 내가 좋아하고 동감했던 그 인물이 되어본다. 이런 드라마나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는 않지만 만나면 기쁨과 동시에 약간의 공포가 느껴질 정도이다. 책도 드라마도 반드시 끝나는데, 나는 마음을 쉽게 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배우에게 지나치게 몰입하지는 않았다. 모두와 마찬가지로 나도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 하지만 그 역할이 좋았던 것뿐.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배우를 만나면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모두 다 이런 느낌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몰입한 후 무언가가 끝났을 때의 허전함.

아이들을 키울 때 사춘기가 와서 아이들이 독립을 하겠다고 할 때 부모들이 느끼는 허전함도 그런 것일까.

너무 최선을 다해서 이미 생각할 만큼 다 하고, 해 줄만큼 다 해서, 그래서 허무해지는 것일까.


그만하자, 정말.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또,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문득 발견한다. 아, 왜 또 이러고 있지, 이게 끝나버리면 어떻게 하지. 문득 공포 아닌 공포가 밀려온다. 그래도 어쩌겠어.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거지. 나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본다. 아, 또 하루를 살아냈다.


我尽全力活过了今天。

我做到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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