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쓰앵님이 떠오르는 찌개.
"고추장찌개 만들어 먹을 건데 어때?"
"힝, 나 고추장찌개 싫은데..."라며 딸이 입을 삐죽 댄다.
'으이그, 저 편식쟁이. 거의 다 싫다지, 고기 빼고.'
나도 속으로 삐죽 댄다.
저 나이 때 나도 그랬기에 소리 내어 삐죽 대기에는 양심이 찔린다.
그래도 선심을 베풀어서 딸이 좋아하는 유부를 잔뜩 넣어준다.
음식을 만들면서 옛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딸아이가 초등학생 때였다.
학년당 딱 한 개 반만 있는 시골학교를 보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은 매우 혁신적인 분이어서 아이들이 매일 선생님의 팔이고 다리고 매달려서 애정표현을 했더랬다.
다행히도 이 선생님이 연달아 3년간 담임이 되어주셨다.
어느 날 나는 주민센터에서 요리 강습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선생님은 내 딸아이와 딸의 절친을 데리고 요리 실습실로 불쑥 들어오셨다.
아이는 "엄마, 선생님 오셨어!"라고 했고, 나는 하던 요리를 마쳐야 했기에 고개만 끄덕여서 인사하고 다시 집중했다.
수업 중이니 선생님은 나가서 기다리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내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봤더니,
'이 사람들은 무슨 관계인가?' 하는 눈으로 사람들이 나와 선생님과 두 아이를 번갈아서 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요리 실습장을 보여주고 싶었던 선생님은 나가지 않고 문 편에서 아이들과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다.
아이와 함께 불쑥 집에 오셔서
"어머니, 가정 방문입니다." 하고는 라면 드시고 가시는 분(선생님과 학부모들은 당황하지 않을 만큼 지독히 친밀해진 상태였다). 빗물 질퍽한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맨발 놀이하시던 분, 매일 학교 뒷산으로 아이들과 산책하시던 분, 봄이면 교실에서 화전 부치고, 여름이면 학교에서 캠핑하고, 겨울이면 군고구마 통에 아이들과 귤 구워 먹는 분.
교장과 다퉈서라도 교육 철학을 지키시는 분. 학부모에게 꼭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끔 그냥 놔둬달라고 하셨던 분.
그 시간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추억이 딸아이의 창의성에 기본이 되었다.
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그 고마운 분과의 추억으로 행복했으니,
<오늘의 메인은 유부 호박 고추장찌개다>.
내게는 이리도 아릿한 기억이 떠오르는 음식이지만, 어미야 그러거나 말거나 딸아이는 오늘의 메인을 교촌치킨으로 정해버렸다.
'으이그, 지나치게 쏘 쿨한 놈'
마음으로 외쳐본다.
'쓰앵님... 오겡끼데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