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콜라를 품은 계란말이
계란말이는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별거 없는 심심한 반찬이다.
야채 넣는 것을 싫어하는 가족에게 맞춰 그냥 계란만 말면 더욱 별 볼일 없고 심심하다. 계란 8개를 풀어서 만들어도 그저 남편의 한 끼 반찬으로 끝날 정도로 허무하기도 하다.
소금으로 간을 맞출 필요도 없는 게 아무리 간간하게 만들어도 케첩이 나타나는 순간 모든 것은 케첩 맛으로 끝나버리니까, 소금은 양념통에 넣어 두는 게 낫다.
그런데 이 요망한 계란말이는 집에서 나가는 순간 특별하고 정감 가며 푸근하고 매력적이기도 한 요리로 변해 버린다.
특별한 술안주가 되어 비싼 값이 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누나가 동생을 위해서 만들어 주는 ‘우리 그때 생각나?’라는 주제가 담긴 추억의 음식이 되기도 한다.
또 매운 음식을 먹을 때는 먹는 이의 고통 속 뜨거운 혓바닥을 토닥토닥하는 선의의 음식이 되기도 한다.
나는 오늘 메인을 <요망한 계란말이>로 정했다.
심심한 계란말이를 요망하게 즐기고 싶은데 무언가 특별하게 속을 채울만한 것이 없어 찾고 있다가 얼마 전 최 과장님이 가져다준 루콜라가 떠올랐다.
최 과장님.
이름도 모른 채 최 과장으로 통하는 사람이다. 남편 회사 동료이고 취미로 농사를 짓고 있다.
최 과장님은 손이 매우 크다.
남편이 “최 과장이 쌈 채소 가져가래.”라고 하던지 아니면 “최 과장이 이번에 농사지은 거 준대.”라고 하면 일단 눈앞이 캄캄해진다. 남편이 최 과장님한테 받아오는 채소는 나 혼자서는 다듬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양이기 때문이다. 달랑 세 명의 입으로는 그것을 다 해결할 수 없으니 우리는 햇볕에 말려보고 나눠보고 냉동도 해본다.
나는 남편한테 꼭 부탁한다.
“최 과장님 마음 정말 감사한데, 우리는 달랑 세 명이니까 제발 조금만 달라고 해봐.”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최 과장님은 여전히 손이 크다.
그래도 긍정정인 점은 최 과장님 덕분에 주변에 음식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옆집과 아랫집 할머니께 일거리를 드리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이 채소를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물어보면 할머니들은 그까짓 거 일도 아니라는 듯이 즐겁게 받아주신다.
이런 나눔이 최 과장님의 큰 손이 아니라면 가능하기나 했을까?
예전에는 그랬다.
엄마가 부침개라도 부치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나누는 게 아이들의 당연한 심부름이었다. 재밌는 게 나는 부추 부침개를 내밀었는데, 그걸 받아 든 옆집 아줌마는 “어머, 우리는 김치 부침개인데... 기다려봐.” 하며 김치 부침개를 다시 들려주시면 우린 두 가지 부침개를 다 먹을 수 있었다.
크... 루콜라를 품은 요망한 계란말이 덕분에 나누는 즐거움에서 옛날 그 시절까지 생각해 본다.
‘역시 계란말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