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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Jun 01. 2022

서클활동 - 개그 동아리 '입큰개그리'

대학시절

1990년 3월, 나는 충남대학교 학생이 되었다. 중고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압도되어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잔디밭에는 학생들이 모여 기타를 치면서 노는가 하면, 대낮부터 막걸리 파티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각종 행사와 모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가득했고, 저 멀리서 장구소리 꽹과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파란 하늘 아래 화려한 패션과 자유로운 헤어스타일로 무장한 선남선녀들이 내 마음을 더욱 두근거리게 했다.


얼마 전 같은 성당에 다니는 한 학년 높은 형이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너 그 학교에 입학하거든 서클활동을 해 봐. 아주 재밌어. 나는 '입큰개그리'라는 서클에서 활동 중이야. 관심 있으면 한번 찾아와 봐. 자세히 설명해줄게" 지금은 '동아리'라고 불리지만, 그 당시에는 '서클'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동아리방'은 '서클룸'.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그 형이 있는 서클룸을 찾아갔다. 제2학생회관 3층을 돌면서 한참을 찾았다. 아주 큰 서클룸이었는데, 6개의 서클이 공동으로 사용을 해서 파티션 없이 큰 테이블이 6개 놓여있었다. 그중 하나가 '입큰개그리' 테이블이었는데 팻말도 없고 멤버도 없으니..?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 알게 되었고, 앉아서 기다렸다. "신입생이세요?" 어떤 여자분이 말을 걸어왔다. "아 네.. 창희 형한테 소개받아서 왔습니다." 나는 이렇게 개그동아리 '입큰개그리'의 멤버가 되었다. '입큰개그리'는 3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싱어 파트, MC 파트, 그리고 개그 파트.  '입큰개그리'는 곧 졸업을 앞둔 82학번 윤환용 선배가 만든 서클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MC계의 전설이라고.  당시 '입큰개그리'의 라이벌 서클이 있었다. '팝스우리'. 이 서클엔 당시에도 유명했던 86학번 신승훈이 있었다.


5월이 되었다. 바야흐로 대학가 축제 시즌. 서클 창시자 윤환용 선배를 주축으로 '입큰개그리' 콘서트를 준비했다. 윤환용 선배의 굿바이 고별무대의 성격도 있었지만 '팝스우리'에 지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듬뿍듬뿍 열심히 기획했다. MC는 당연히 이름만 들어도 모든 캠퍼스가 환호하는 윤환용 선배가 맡았고, 초대가수로 대학가의 아이돌 박학기를 섭외했다. 서클 멤버들도 각자의 파트에서 하나 이상의 무대를 준비했다. 나는 이른바 '토크송'이라는 것을 준비했다. 토크송은 기타로 반주를 하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일종의 콩트다. 대본을 한 달 이상 준비했다.


드디어 콘서트의 날이 밝았다. 오후 3시. 콘서트 장소인 영탑지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시작시간 4시쯤에는 대략 천명 이상이 모였다. 윤환용과 박학기가 만나니 기대가 폭발적이었다. 엄청나게 큰 여러 대의 스피커로 무장된 무대에 라이트가 켜지고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전설의 MC 윤환용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와 함께 재치 넘치는 오프닝 토크가 시작되었다. 10분 이상 이어지는 윤환용 선배의 말솜씨는 그야말로 왜 전설이라고 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경지였다. 대본을 준비한 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벌어지는 작은 상황 하나를 가지고 모두에게 큰 웃음을 준다. 하다못해 마침 위로 날아가는 헬기콥터까지 메뉴가 된다. 김재동이 그렇게 말솜씨가 좋아 대구에서 유명한 MC라고 들었는데, 대전에서는 윤환용이 있었고 둘을 붙여 놓으면 초 박빙 배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서클 멤버들이 준비한 무대가 이어졌다. 싱어 파트는 노래를 불렀고 개그 파트는 열심히 준비한 개그를 선보였다. 어느덧 내 차례. 이렇게 많은 대중 앞에 혼자 선다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떨렸다. 엄청 떨렸다. 기타를 잡고 의자에 앉았다. 수 많은 관중의 눈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기타 반주를 시작하면서 수없이 연습한 토크를 시작했다. 점점 첫 번째 웃음 포인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와~~ 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크게 들렸다. 다음 웃음 포인트에서도 계속해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관중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중반을 넘어섰는데 웃음소리의 크기가 점점 커짐을 느꼈다. 박수소리도 들린다. 이제 하이라이트. 떠나갈듯한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사히.. 너무나도 감사하게 무사히.. 내 코너를 마쳤다. 대중은 큰 박수로 나를 칭찬해 주었다. 그때 그 느낌이란...


영탑지 토크송 #1


영탑지 토크송 #2


모든 멤버가 준비한 코너가 끝나고 가장 마지막에 박학기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총 5곡. 역시 인기가수에 걸맞게 그날 캠퍼스의 모든 학생들은 영탑지로 모여들었고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윤환용 선배의 고별인사와 함께 콘서트가 끝났다. 지금 생각해도 꿈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도 감격스럽고 즐겁고 뿌듯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윤환용 선배와 모든 서클 멤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가수 박학기씨와 함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뭔가에 도전하는 경험을 해보니 왠지 예전보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학내 지인들로부터 '대단하다' '잘했다'라는 칭찬을 들어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 MBC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나보고 출연을 해달란다. 지난 '입큰개그리' 콘서트 때 방송국 관계자가 왔었고 내가 진행한 '토크송'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자신감이 생겨서일까? 출연 승낙을 했다. 몇 주 후 새로운 대본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출연료로 8천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받았다. 돈을 떠나서 뭔가 인정받는 느낌.. 정말 좋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이 점점 커졌다. 이번엔 서울 MBC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TV 프로그램 PD가 연락을 해 온 것이다. MBC TV 프로그램명은 '보통사람 보통무대'. 사회의 여러 단체가 참여하여 다양한 코너를 선보이고, 심사위원들이 각 단체에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사회는 왕영은 정한용 두 분이 진행하였고, 심사위원으로는 이낙훈, 서세원 그리고 또 한분이 계셨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회팀, 주부팀, 동호회팀 등등 여러 단체가 참여를 하였고, 나는 대학생팀으로 참여를 했다. 이번엔 '토크송'이 아니다. PD와 상의 끝에 콩트를 하기로 했다. 개그맨들이 하는 콩트를 아마추어가 만들어서 TV에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전국 방송으로.. 콩트 주제는 '반상회'. 40대 주부로 분장을 했다. 나 외에 또 한 명의 여학생이 함께 출연을 했다. 서울에 올라와 PD 집에 2박 3일간 머물며 대본을 만들었고 연습에 연습을 거쳐 드디어 녹화를 하게 된 것이다. MBC 방송국 녹화장에 들어가니 사회자와 심사위원들이 이미 자리를 하고 있었고 방청석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다. 이런 연령층 사람들에게 우리 대본의 웃음 포인트가 먹힐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녹화 시작. 우리는 4번째로 무대에 올라간다. 떨렸다. 아주 많이 떨렸다. 여러 팀이 무대에 올라가고 내려오기를 반복..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다. 많은 카메라들 앞에서 연습한 대로 차분하게 진행을 하였다. 첫 번째 웃음 포인트에 도착했다. 반응? 오 마이 갓! 웃음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두 번째 웃음 포인트에 도착했다. 역시 관중석에서는 아무런 웃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긴장을 해서 안 들린 게 아니다. 정말 아무도 안 웃었다. 이런 된장.. 무대를 내려올 동안 단 하나의 웃음도 듣지를 못했다. 완전 망한 것이다. PD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대전으로 내려왔다. 출연료로 5만 원과 가구 티켓 한 장을 받았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호응을 잘해주는 같은 또래의 대학생과 웃음 포인트의 공감대가 없는 중장년층의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나중에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녹화한 방송을 1주일 후 본 방송 시간에 보았는데, 웃음 포인트마다 웃음소리가 나왔다. 아.. 이렇게 웃음 효과를 넣는 거구나.. 편집을 통해 재미없던 콩트도 재밌게 보이도록 할 수 있는 거구나.. 쓴웃음이 나왔다.


촬영후 정한용씨와 함께


그 이후 군대 입대를 하기 전까지 '입큰개그리' 서클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주로 축제나 페스티벌과 같은 대학가 행사의 MC로써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기회가 많았다. 서클 선배들로부터 MC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배웠다. 

대중을 내가 생각한 대로 이끌어야 하는 MC. 

대중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MC.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무난하게 대처해야 하는 MC.

우연히 아는 형을 통해 들어간 '입큰개그리'. 지금의 내 성격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 것은 틀림이 없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도전과 모험을 나는 이 서클을 통해 몸속 깊숙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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