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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와 일이 Mar 02. 2024

 규슈 올레

< 후쿠오카・신구 코스  >

7. 후쿠오카・신구 코스(福岡・新宮コースマップ)

   (원래 인연이 없었던 길...?)

코스 : 신구마치 커뮤니티 버스 사야 버스 정류장→ 산봉마츠야마산(1.4km)→ 다치바나구치 오래된 마을(3.1km)→ 로쿠쇼신사(3.6km)→ 돗코지절(3.8km)→ 신구 사랑의 언덕(전망대)(4.7km)→ 다이코우스이(5.9km → 부부・아이 수호신(6.3km → 오키타중앙공원(8.3km)→ JR신구추오역(8.9km)→ 다테노마츠바라 송림숲(10.6km)→ 신구해안(11.0km)→ 니시테츠신구역(11.9km)

  오늘은 규슈 올레 걷기 일곱 번째로 ‘후쿠오카-신구(福岡-神宮) 코스’를 간다. 깨끗한 숙소에서 편히 쉬었더니 개운하다. 둘이 하는 여행에서는 리듬이 중요하다. 이른 새벽잠이 깼는지 남편이 부스럭거린다. 모르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니 남편도 더 누워 깨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결국 30여 분 후에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연다.    

  첫날 가려다 버스가 떠나 버려 낭패감과 아쉬움이 컸던 길인 만큼 꼼꼼하게 교통편을 메모해 두었다. 출발 시각은 물론 환승 소요 시간까지 계산하여 실수를 줄이자고 다짐하며 서둘러 전철역으로 걸음을 옮긴다.      


 전철에 올라 초긴장을 하며 방송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커뮤니티 버스를 갈아 탈 전철역을 알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역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어쩨 익숙하지가 않다. 첫날 왔던 그 장소가 아닌 것이다.

‘오! 이럴 수가! ’

뒤에 오던 남편은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당신이 여기라고 했잖아?’라고 하며 역정을 낸다. 

지난 밤에 내가 확인하기로 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황당하기로 치면 내가 더 할텐데 추궁하듯 하는 남편에게 침묵으로 맞불을 놓는다.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서두르게 되고 또 마음이 침착하지 못하니 허둥대다 결정적으로 역을 잘못 알고 간 것이다. 훗코다이마에(福工大前)와 후쿠다이마에(福岡大前)를 혼동한 것이다. 

열차를 갈아타는 지점에서 열차의 방향만 보고 급히 올라탔는데, 열차가 분기점에서 두 방향으로 갈라지고 발음이 헷갈려 다른 장소로 오게 된 것이다.  

    

후쿠다이마에(福岡大前) 역무원의 친절하고 꼼꼼한 안내 덕에, 출발역으로 돌아가 목적지인 훗코다이마에(福工大前) 역에 도착한다. 

 버스는 1시간 20분 뒤에 온다. 기분이 상하고 기운도 빠졌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역사 내부의 벤치에 앉았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어디를 가는지 바쁘게 역으로 밀려 들어온다. 

쌀쌀한 날씨에도 외투나 겉옷을 걸치지 않은 교복 차림의 싱싱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풀리고 나의 학창 시절 모습을 소환하며 상념에 젖는다.  

    

한바탕 학생들의 무리가 썰물처럼 떠난 후의 역사는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하다. 더디 가는 시간을 응시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본다. 

< 역사 1층에 있는 전통술 판매점 >

역사의 아래층은 편의점과 지역 술 판매장이 있다. 늘어선 일본 청주와 소주의 병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마침 남편이 가평에서 술 빚는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14도짜리 청주 작은 병 하나를 사들고 대합실로 다시 돌아왔다. 화장실을 찾아가다가 역사 안에 오래된 지역보건센터와 도서관을 발견한다. 보건센터에는 여러 시설을 갖춘 체육관이 있고, 운동을 막 끝낸 백발 성성한 노인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도서관은 좌식으로 작고 아담해 보였다.   

  

< 사야행 로컬버스 >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다. 정확하게 12시 20분에 버스가 도착한다. 사야(佐屋)행이라 쓰인 것을 다시 확인한다. 도중에 공사하는 곳도 있었고 기사님도 서두르지 않는다. 이래저래 돌아 올 길이 걱정이다. 


  후쿠오카-신구(福岡-神宮) 코스의 출발 지점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었다. 게다가 좀 황량한 시골 풍경과 고속화 도로의 자동차 소음을 들으며 걸으려니 시작부터 지치고 감흥이 떨어진다. 그러나 십분 정도를 지나자 이내 숲길로 접어든다.  

울창한 대나무 숲길이다. 대나무의 굵기가 엄청나다. 잘라서 세수대야로 써도 될 정도라고 남편이 농담을 건넨다. 대나무 숲사이로 불어 오는 바람이 싱그럽다. 지친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된다. 역시 숲은 언제나 좋다. 

    

숲이 끝나고 마을의 고샅길을 걷다가 다시 숲이 나오고 다시 마을 길로 이어지고 다시 작은 도로를 가로질러 낮으막한 언덕에 오르니 건너편에 입화산이 보이고 멀리 신구(神宮)의 아담한 시가지가 보인다. 


 숲길은 차도의 옆길로 이어지고 몇몇 숲길은 무슨 이유인지 폐쇄된 곳도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놀란 까마귀 떼가 목청을 높여 굵직하고 쉰 소리로 울어 댄다. 걷기에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자연의 감흥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교포 청년이 운영하는 석화구이 집 >

도중에 점심 요기를 위해 들른 간이식당에서 숯불에 석화를 구워 주는 교포 청년을 만났다. 서툴게 한국말을 하며 할아버지 고향이 경상북도 어디라고 한다. 소주 한잔 곁들여 먹고 계산하려는데 예상보다 많이 나온 듯 해 물어보니 숯불 차림비가 붙은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니 씁쓸하고 안쓰럽다. 언젠가 고향을 찾으면 만나자는 의례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언덕을 오른다.  

< 부부・아이 수호신 >

언덕을 오르니 부부자수대명신(夫婦子守大明神)을 모신 신위와 붉은 색의 문이 주욱 늘어선 길을 지나게 된다. 부부간의 사랑과 자식과 부모와의 사랑을 지켜주는 신에게 기도하며 걷는 길인 듯하다. 

< 오키타 중앙공원・신구마치 관광안내소 >

 언덕을 내려서자 다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깨끗한 도시의 건물들과 한적한 오키타 중앙공원이 우리를 맞는다. 마음이 환해진다. 학교 건물도 지난다.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다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하며 깔깔거린다. 무거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하다.     

 

 길은 마을 뒤편으로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 해변으로 이어진다. 불어오는 솔바람에서 향내가 난다.  

길고 단조로운 길을 걸어온 도보 여행자들에게 보상이라도 해 주는 듯 아늑한 백사장과 바다가 펼쳐진다. 낮으막한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가니 수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어쩌면 출발이 지연된 덕에 해 질 녘 바다 풍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종일 이동하여 생전 처음 만나는 낯선 곳에서 바닷가의 일몰을 바라보며 저녁 풍경에 취해본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안갯 속과 같다. 어슴프레 짐작하며 그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 하루가 그런 날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덜어낸다.   

        

너무 지친 탓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 코스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먼저 걸었던 여섯 개의 길들에 비해 그리 매력이 있는 길은 아니었다. 

 다시 오던 방향을 되짚어 숙소가 있는 텐진(天津) 역으로 간다. 

한 번 실패 후 다시 도전한 길인데, 역 이름을 헷갈려 헤맨 탓도 있지만 이 길은 먼 길을 온 여행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부족하고 관리도 잘 안 되는 길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음에 아쉬움이 끝내 남는다. 

 다만 첫 번째 길로 선택되어 규슈 올레 전체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이 또한 규슈와 후쿠오카의 수많은 신들이 내린 은총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숙제 하나 끝낸 홀가분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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