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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와 일이 Feb 05. 2024

규슈올레

< 가라쓰 코스 >

6. 가라쓰 코스(九州オルレ佐賀県 唐津コース)     

      (하도미사키가 하마사키로 바뀐 날)

 코스 : 미치노에키 모모야마텐카이치(특산물 판매점) →마에다 토시이에 진영터 (0.2km)→
         후루타 오리베 진 영터 (1.0km)→호리 히데하루 진영터 (2.1km)→400년 역사의 길 (2.9km)→
         다원「카이게쓰」 (3.7km)→다이코미치 (3.9km)→히젠 나고야성터 천수대 (4.5km)→
        가라쓰도자기 히나타가마 (5.9km)→하도미사키 소년 자연의집(수련장) (7.0km)→
        하토미사키 산책로 (9.5km)→소라구이 포장마차 (11.2km)     


 여행은 늘 우연의 연속이다. 아무리 계획하고 철저히 계획을 세워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긴다. 규슈 올레를 걷는 동안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 꼭 부딪힌다.

 다케오 온천역 호텔에서 4박 5일간 머무는 동안 시마바라 반도의 두 코스를 하고 다케오와 우레시노 두 개의 코스를 완주하여 총 5개의 코스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호텔 대중탕의 온천욕도 충분히 즐기고 武雄의 기운을 잘 받고 떠난다. 다시 온다는 말을 하기엔 좀 자신이 없지만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니 다시 올지 못 올지는 그냥 미정으로 남겨 두자.


 규슈 서북단 가라쓰 지역으로 이동한다. 교통편이 좀 복잡하고 운임도 싸지 않다. 버스냐 기차냐, 산큐패스를 끊네 마네 하며 신경을 쓰다가, 결국 당일 기차표를 구입하고 버스를 환승하기로 하였다. 

어제저녁 우레시노에서 만난 세 명의 중년 선생님들도 가라쓰 코스 도전이 힘들어 포기했다고 한다. 우리는 1박을 하며 피로도 줄이고, 먼 거리 여정의 난점을 극복하기로 한다. 덕분에 숙소도 좀 비싼 료칸으로 예약했다. 가라쓰 올레의 종착점이자 소라 포장마차로 유명한 바닷가 마을이 또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라쓰 코스 출발을 위해 ‘다케오 온센 센트럴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기차 두 번, 버스 두 번 환승 끝에 하도미사키역에 도착했다. 올레 종점에 있는 호텔에 짐을 맡기기 위해 마을버스에 올라 우리가 오늘 묵을 곳을 보여주니 기사 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다. 종점에 내려 호텔을 검색하니 지금 있는 지점에서 43km나 떨어진 곳으로 나온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남편이 화를 낸다.

"도대체 당신은 지도를 보고 예약한 거야?"

할 말은 없는데 덩달아 화가 나 "그럼 내가 하마사키역 교통편 알아볼 때 당신은 뭐 한 거야…." 큰 소리로 응대한다. 

 "뭐라고? 내가 분명 올레의 끝 지점이 하도미사키라고 했는데…." 남편의 화는 점점 증폭되며 목소리가 커진다. 

할 말은 없지만, 왠지 억울하고 섭섭하다.

이참에 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이내 마음을 접는다. 

방법은 호텔예약을 취소하느냐? 아님 가라쓰 코스를 포기하고 숙소로 가느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기저기 알아본 숙소 예약도 모두 실패다. 


한참을 우왕좌왕, 붉으락푸르락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다 심기일전한다.

"산티아고 때 남아공 할머니도 큰 짐을 지고 끝까지 걸었잖아. 까짓 우리도 짐 지고 거꾸로 해보자."


나의 제안에 어이가 없는지 일단 소라구이를 먹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남편이 절충안을 내놓는다.

평소 같으면 단칼에 잘랐을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포장마차에는 각종 해산물 구이를 팔고 있었는데 우리는 푸짐한 소라구이와 갑오징어구이에 곁들여 정종 한 잔까지 마시며 결의를 다진다. 덕분에 기분이 풀어진 우리는 배낭을 앞·뒤로 고쳐 매고 돌하르방이 있는 끝 지점부터 파란색 순방향 표시가 아닌 빨간색으로 된 역방향으로 발걸음을 힘차게 옮긴다. 



< 하도미사키의 돌하르방 >

시작점엔 제주도 올레의 표식인 돌하르방 2개가 양쪽에 세워져 있다. 제주와 협업으로 만들어진 규슈 올레의 상징을 나타내는 듯한데 무척 정겹고 뿌듯하기까지 하다.

가라쓰 코스의 종착지인 하도미사키 해수욕장은 공원으로 저 멀리 현해탄이 보이고 볼거리, 포토존이 여러 개 조성되어 있어 해변 가게에서 오징어와 소라구이를 먹은 가족, 연인, 친구끼리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가라쓰 코스는 시원한 바다와 역사 그리고 액티비티가 있는 코스이다. 


특히 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나고야 성터는 국가의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2년에 축성한 성으로 일본에 남아있는 모모야마 시대의 성곽 중 최대급의 성터라고 한다. 웅장한 석벽이 남아있는 이곳의 천수대에서는 멀리 이키섬과 대마도까지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건물은 모두 허물어지고 무너진 석벽만 남아있지만, 임진왜란을 위해 구축했던 성이기에 걷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아픔이 묻어나는 길이다. 길은 또 임진왜란의 중심이 된 전국 160명의 다이묘가 집결되어 만든 130개 진영 터로 연결된다. 이 중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23개의 진영 터는 국가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 돌담과 토루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씁쓸한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게 한다.      

< 니고야 성 터로 임진왜란을 준비했던 곳 >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묵직했는데 마지막 지점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서 치유를 받는다. 일본 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역사에 대한 전시물이 우호・교류의 관점으로 추진되었다 한다. 2층의 널찍한 전시관에는 수월관음도와 미륵반가사유상 그리고 거북선 모형과 이순신 영정 등 예상치 못한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객관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전시물들을 통해 한일의 교류와 친선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박물관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긴 탓에 이동할 시간이 촉박하다. 미치노에키 모모야마텐카이치(특산물 판매점)에 도착하여 로컬 버스를 타고 오늘의 숙소로 이동한다.     

 

우여곡절이란 말을 자주 쓰게 된다. 오늘 가라쓰 코스는 새옹지마의 고사를 체험하게 해 준 여정이었다. 일본어가 서툴러 가라쓰의 종착 지점인 하도미사키의 발음을 잘못 인지하여 하마사키라는 곳으로 숙소를 정하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다. 자칫 올레를 포기할 뻔한 위기를 잘 넘기고 무사히 여섯 번째 도전을 마친다. 



  어둠이 내린 하마사키는 가라쓰 인근 바닷가의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다.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적한 골목길 깊숙한 곳에 ‘바람의 소리’라는 료칸과 만난다. 료칸은 60년 평생 처음이었다. 밤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수탕 온천을 하리라 고는 상상도 하질 못했다. 유카타(浴衣)로 갈아입고 화과자와 녹차를 마시니 오늘 힘들었던 여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내일 아침은 그 유명한 20첩 반상의 료칸 조식을 먹고 가족탕에서 오붓하게 목욕도 즐기며 모처럼 여유 있는 휴식을 즐기게 될 것이다. 생뚱맞은 곳에 숙소를 정한 덕(?)에 엉뚱한(?)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 시련을 잘 딛고 극복하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 전화위복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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