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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와 일이 Dec 26. 2023

      규슈올레

                    < 우레시노 코스>

5. 우레시노 코스

* 코스 : 히젠요시다야키(도자기)가마모토 회관 → 다이조지(절) • 요시우라신사(0.5km) → 니시요시다 다원 (1.8km) → 니시요시다의 권현불상과 13보살상 (3km) → 보즈바루 파일럿 다원(4km) → 22 세기 아시아의 숲(5.5km) →시이바 산소(8.7km) →토도로키노타키 폭포공원(10.2km) → 시볼트 유(대중탕) (12km) →온천공원・상점가→시볼트의 족욕 (12.5km)


  새벽부터 일어나 온천욕을 하고 이른 조식을 먹는다. 20여 가지가 넘는 일본 가정식 반찬이 시간별로  정갈하게 리필되는 호텔 조식이 인상적이다. 욕심껏 담지 않고 아주 조금씩 먹을만큼만 담는 일본 사람들의 식문화에서 일본을 배운다.


우리 부부는 이제 일주일을 넘기고 다섯번 째 규슈올레 길을 향해 가고 있다. 오늘 걷게 될  우레시노 코스는 다케오 온천역에서 축성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가미사라야행  버스를 갈아 타고 요시다 사라야(吉田サラヤ)마을까지 가서 시작해야 한다. 

우레시노 올레길을 열기 위해 담당 공무원이 두 번씩이나 승인에서 탈락하고 울음을 삼켰다는 뒷이야기가 특별한 기대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곳 역시 온천 지역이다. 온천은 다 같을 것이라는 나의 의견에 지역마다 식생도 다르고 풍광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듯이 온천물의 성분이나 온천장과 주변의 모습도 다르지 않겠느냐고 남편이 말한다. 


요즈음은 혈액형 대신 MBTI로 성향을 파악한다. 전형적인 ISTJ 형인 나는 철저하게 계산하고 따지며 여행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랬고, 이곳 규슈 올레길도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그런가? 점점 느긋해진다. 그저 길이 이끄는 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우레시노의 시작점인 가미사라야 마을행 로컬버스는 자주 다니는 버스는 아니다. 전날 여러모로 이동 계획을 고민해 보았다. 우리는 7시 55분 버스를 타고 축성 역에서 8시 29분 가미사라야 행 버스를 갈아타는 것으로 생각을 모았다.    

  

8시 21분, 8분을 남겨 두고 축성 역에 내려진 우리는 부리나케 뛰어 기사가 알려준 환승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8시 27분이다. 우리는 기분 좋게 하이 파이브까지 하고 곧 도착할 버스에 오를 준비를 한다. 그런데... 시간은 흐르고 버스는 오지를 않는다. 

이게 웬일이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으니 정류장이 여기가 아니란다. 아뿔싸! 멘붕이다.

< 버스 요금이 무료 >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찬찬히 다시 정류장 표시를 확인하고 대각선 쪽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찾고 있는 정류장이다. 이제 느긋한 마음이 되어 버스를 기다린다. 한 삼십 분 정도 지나니 ‘上皿屋 가미사라야행’ 행선지가 선명하게 적힌 버스가 도착한다. 반가운 마음에 올라탄다. 일요일이라 시간이 평일과 달랐던것이다.      

또 기분이 좋은 것은 두 번이나 버스를 탔는데, 요금이 무료란다. 사가현에서는 일주일에 이틀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버스 요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교통 요금이 비싼 일본에서 만난 뜻밖의 행운에 삼십 분 기다리며 속상했던 마음은 포근한 날씨처럼 눈 녹듯 사라지며 기분이 한껏 상쾌해진다.   

   

 



사가현에 속한 우레시노는 우리나라 ‘읍’정도의 작은 온천 마을로 매우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인다.      

우레시노 코스는 요시다 사라야(吉田サラヤ)마을에서 시작한다. 

먼저 히젠 요시다 가마모토 회관(肥前吉田釜本会館)으로 가 스탬프를 찍는다. 7개의 공방에서 만든 각양각색의 도자기 작품 감상도 하고 내친김에 앙증맞은 작은 접시도 몇 개 산다.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식이나 특산품을 사는 것도 여행에서 맛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 히젠 요시다 가마모토 회관 도자기 판매장 >

규슈 올레 5코스를 걷는 동안 우리 외에는 걷는 사람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젊은 부부를 만났다. 규슈 관광청에서 선정한 유명 코스여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일요일이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무튼 호젓하게 다니던 길을 같이 가는 사람들이 있어 변화도 있고 조금은 든든하기도 해서 좋다.     

요시다 사라야 마을은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굴뚝과 요가 보이고, 마을 공원 앞 담장도 도자기로 그림을 만들어 놓았고 올레 표시도 도자기로 되어 있어 색다른 분위기다.      


마을을 돌아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노인용 유모차에 기대고 앉아 있다. 물끄러미 쳐다보기에 "오하이오 고자이마스"로 인사를 건네니 얼굴의 외로운 기색을 거두며 웃으신다. 길을 가는 나는 저 할머니의 과거요, 앉아 있는 할머니는 나의 미래다. 길을 걸으며 자연과 사람의 순환 원리를 자연스럽게 보고 받아들이는 순응의 원리를 배운다.      

요시다 도자기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여 건립된 다이죠지 절과 요시우라 신사는 마을 끝 지점에 있다. 이른 아침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담장 옆에는 빨간 앞치마를 두른 지장 보살들과 색색의 바람개비가 조용한 경내의 분위기와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안쪽에는 도자기의 신을 모신 요시우라 신사가 있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곳에 우리들의 발소리만 들리는 정적이 섬칫해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어두운 대숲 길로 접어든다.


 습한 지역이라 그런지 이끼가 많아 조금 미끄럽다. 빽빽한 숲 사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숲의 뽀얀 안개를 거두어 간다. 그러더니 이내 숲길이 끝나고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진다. 초록의 녹차밭이다.

 우리나라의 강진과 보성처럼 우레시노 마을도 도자기와 차로 유명하다. 차와 도자기는 필연적이며 운명적인 조합이다. 그런 느낌으로 녹차밭(茶園)을 걸으며 이곳 사람들의 삶에 예술과 노동이 어떻게 녹아 있을지 상상해 본다. 나지막한 구릉 같은 산자락에 다랑논처럼 펼쳐진 싱그런 녹차밭 사잇길은 걷기에 참 좋다. 

 녹차밭의 구릉을 서너 개 지나니 길은 이내 산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자연 보전림으로 가꾼 메타세쿼이아 숲과 아시아의 정원으로 명명한 아시아 여러 종의 나무들이 있는 숲이 울창하다. 그 나무 중에는 무궁화나무도 있다. 수령이 오래되고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 숲 전망대에서 강 건너 맞은 편에 들어선 또 다른 메타세쿼이아 숲 군락을 바라본다. 경이롭다.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대자연의 신비가 진한 감동으로 걷는 내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 앞에 올레를 걷는 등산객이 보인다. 거의 우리만 걷는 길에서 사람을 만나다니 이도 참 신기하다. 우리 또래의 일본인 부부였는데 부인은 좀 수줍은 듯 가벼운 눈인사만 건넨다. 아마도 소심한 성격일 수도 있고, 외국인과 소통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일께다. 오감이 자유로워지는 신비로운 숲의 정적 속에서 뜻하지 않은 조우인데 어찌 반갑지 아니하랴. 그저 서로 속 깊은 감정을 마음속에 담아두려는 것이리라.

그런데, 우리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의 이름을 알아본다고 핸드폰 렌즈로 검색하다가 그만 두 갈래 길에서 길을 놓치고 말았다. 이를 알아챈 것인지 일부러 큰 소리로 아내와 대화하는 남자의 음성이 들려 그곳으로 길을 잡는다. 그 길이 마을의 도로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산길의 끝에서 휴게소를 겸한 작은 신사에 앉아 있는 부부와 만난다. 자리를 내주기 위해 일어서며 남자가 말한다.

 "당신들 길을 잃은 것 같았는데. 잘 찾아와서 다행이다."라고 말을 건네는 부부에게 "당신 음성 덕으로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고마웠다."라고 하며 서로 작별한다. 


 늘 길 위에서 만남은 헤어짐으로 이어진다. 함께 한 시간이 많을수록 이별의 아쉬움도 큰 법이고 비록 짧은 스침이어도 그 표정과 체취가 묘한 여운과 그리움으로 강하게 남을 때도 있다. 길을 추억하는 것은 당시 감지되었던 오감의 작용을 다시 기억해 내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 속에는 늘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들)'이 있다.

 대도시의 일상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순간순간의 짧은 영상으로 명멸하다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광활한 우주의 숨결을 느끼며 열린 마음으로 걷는 고적한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결이 다르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의 미세한 선율을 들으며  키 큰 침엽수림 사이로 속살거리며 퍼지는 햇살들을 감촉하며 대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는 동질감이야말로 걷는 자들이 공유하는 특별한 공감이며 한편의 로드 다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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