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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이와 일이 Jul 14. 2024

규슈 올레

< 아마쿠사 마츠시마 코스 >

11. 아마쿠사・마츠시마 코스(三大松島の絶景に言葉をなくす)

*. 코스 : 치주관음 → 치주해안 (1.7km) → 산길 입구 (4.3km) → 센겐모리다케(5.5km) →구마모토현립아마쿠사 청년의 집(6.1km) →센간잔 정상 (7.3km) →거석(7.8km) → 마츠시마 관광호텔 미사키테이 (9.3km) →류노아시유 족욕시설 (11.1km)


  구마모토현에 있는 세 개의(아마쿠사-레이호쿠, 아마쿠사-마츠시마, 아마쿠사-이와지마)코스는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가장 어려운데 위치해 있다. 한때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5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육로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는 하나 그 시간과 경로가 복잡하다.

전날 밤 이동 경로를 짜다가 엉키고 엉켜 포기를 선언한다. 이동할 때 우리는 기본 원칙으로 교통 비용이 저렴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시간도 단축하려다 보니 매우 신경 쓸 요소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동안 쌓인 피로도 한몫을 했다.   

                        "나 못해..."

                   어이가 없는지 남편이 쳐다본다.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쉬어"

나는 늘 2% 부족한 인내력 탓에 그동안의 수고를 다 까먹는데, 남편은 결정적인 순간에 너그러운 말씨로 그 공을 다 가져가는 듯한 분위기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협동 작전에 돌입한다. 장고끝에 아마쿠사 마츠시마 코스 근처에 숙소를 정했다. 그 숙소에서는 세 개 지점 코스의 시작점과 종점에  데려가고 오는 ‘송영서비스’를 해 준다고 한다.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는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에 눈을 떴다. 창 밖은 아직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니시테구루메에서 버스로 구루메역까지 가서 신간센 열차를 타고 구마모토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시 국철을 갈아타고 미스미역으로 가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복잡한 여정이다.      

몇 시간이 걸려 도착한 미스미역의 안내소로 가 <마에즈마>로 가는 갈아탈 버스를 알아보니 이곳에서 타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몇 차례 다니지 않는 버스가 곧 도착할 것이라 빨리 택시 타고 움직여야 그나마 탈 수 있다고 한다.  

친절한 안내 덕에 마냥 기다릴 뻔했던 시간을 줄여 숙소인 <마츠시마 관광호텔 미사키테이>에 도착한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아마쿠사-마츠시마 시작점을 가기 위해 호텔 송영 서비스를 신청하여 이동한다.

우리나라 작은 시골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올레 시작점 마을 초입에 ‘지주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닦아 놓고 싱싱한 꽃과 정한수가 정갈하게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른 아침에 마을의 누군가가 다녀간 모양이다.

 일본 사람들은 신과 죽음을 삶 가까이에 두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보는 영화에서 제단을 집안에 설치하고 드나들 때 인사하는 모습이나, 마을 어귀나 산속에 있는 사당도 방치되어있지 않고 매일 쓸고 닦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인다. 또한  서양에 다녀 보아도 마을마다 성당과 묘지가 있다.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죽음과 삶을 의도적으로 분리하는 각박한 문화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규슈 올레를 걸으며 죽음이 주는 지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사람 소리는커녕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마을을 지난다. 집들은 모두 산기슭 가까이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전경에는 넓은 논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맛있기로 유명한 아마쿠사의 조기미 벼를 키우는 6만 평방미터의 광활한 모습은 예전 김포평야를 떠올리게 한다.  

 논 사이로 금천천이 흐르고 그 강둑길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 보이던 산이 어느새 가까워진다. 너른 평야를 걸으며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길은 탁 트인 해안가 돌길(지주해안)로 이어진다.

곧이어 숲길 오르막이다. 평탄한 산길은 걷기 좋은 길이다. 그러나 어찌 평탄한 길만 갈 수 있으리오. 가파르지는 않지만 숨이 서서히 차오르는 오르막을 오르니 키 작은 소나무와 활엽수림이 빼꼭한 8부 능선이다.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길 끝에 오뚝 솟은 바위산 정상을 향한다. 오르는 길은 바윗길로 미끄러울 뿐 아니라 험하고 가파르다. 센겐모리다케 암봉 위에 오르니 주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들어온다. 푸른 바다는 잠잠하고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 그리고 아마쿠사를 이어주는 큰 다리의 모습이 평화롭다.

아마쿠사는 제도는 1637년, 농민반란 때 반란군의 지휘자였던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  흔적이 곳곳에 있다. ‘시마바라난’으로 불리는 농민 반란은 에도 막부가 기독교를 잔인한 방식으로 박해하고 가혹한 수탈을 자행하자 이에 맞서 일으킨 봉기이다. 이때 선봉장이 아마쿠사 시로이고, 당시 고작 16세 소년이었다. 하라성에서 몇 개월 버티었으나 배신자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순교했던 일본 역사에서 꽤 비중 있는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야기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시로가 잔치를 열고 동료들과 국자로 술을 떠먹으며 결의를 다진 곳이 나온다. 배낭에 준비해 둔 사케 한 모금을 남편과 들이키며 그들의 혼과 잠시나마 한데 어울려 본다. 술이란 산자만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혼도 위로해 주는 법이다. 다향보다는 주향이 더 흠향하기 수월하고 물은 땅속으로 갈아 앉지만 술은 하늘로 오르니 구천을 떠도는 혼백들도 즐기기에 안성맞춤일 터이다. 40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길 가던 이방인이 건네는 한 잔의 술로나마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내려오는 길은 반대편 오르던 길과는 달리 좀 수월하다. 대신 에둘러 가는 길이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잠깐 일종의 환상방황에 든 것이거나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머지않아 암봉의 출발 지점이 보인다. 마음먹고 내려가면 금방 내려갈 것이다. 기분 좋게 속도를 내본다.

문득 우리나라 바닷가에 위치한 예쁘지만 험한 산들을 오를 때의 생각이 겹쳐진다. 이제껏 보아왔던 산들과 다르게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며 제법 땀도 흘리게 하는 산이다. 뛰다시피 빠르게 내려오니 이케지마 용의 전설을 바탕으로 설계된 족욕시설이 우리를 반긴다. 따뜻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며 오늘의 피로를 풀어본다.           

오늘 숙소는 시설은 낡았지만 료칸 분위기가 나는 오래된 온천관광호텔이다. 널찍한 다다미 방에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가 있고, 대중 온천도 있어 아마쿠사 마츠시마 올레를 하고 긴장된  몸의 피로를 풀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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