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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Jul 04. 2023

비밀이에요

세상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아무도, 우리 엄마 조차도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

아, 어쩌면 엄마는 모르려나.


우리 엄마는 아프다.

언제였더라,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시작하기 전이니까 한 3년전에 우리 집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났다.

엄마가 아파졌다.

엄마는 일찍이 아이가 되기로 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엄마랑 아빠가 병원을 다녀오더니 어느날 저녁 엄마가 책장 정리를 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기억을 잃는대. 경도 인지장애래."


세상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인지장애라니?

내가 알기로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은 없었다. 엄마는 인지에 문제가 생길 수 없었다. 게다가 앞에 '경도'가 붙었으니까, 그렇게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싶었다.


괜찮을거라고 위로했다. 80퍼센트가 6년 안에 치매가 온다지만 엄마는 20퍼센트일거라고. 걱정하지말라고.


엄마는 하루하루를 울며 보냈다. 어느날은 신경질을 냈고, 또 어느날은 다시 울었다.


2019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날 아빠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을 데리러 가는 날이어서 차에는 나와 아빠뿐이었다.


아빠는 엄마 얘기를 시작했다.

"너희 엄마가 아파."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차라리 암에 걸리지, 차라리 암이 낫지. 어쩌다 몹쓸 병에 걸려서."라고 울부짖으며 핸들을 내리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뒷좌석에서 당혹스럽게 지켜보던 나는,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아, 우리 엄마한테 치매가 오겠구나.

이제 50대 초반이 갓 되어서, 이제 막 첫딸이 돈 벌어 효도하려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세상이 정말 가혹하구나.


그 후부터 엄마의 증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1일, 차례를 준비하던 엄마는 떡국떡을 불렸는지 세번을 물어봤다. 나는 불렸다고 세번을 답했다. 그래도 엄마는 불안했는지 결국 본인 손으로 새로 불렸다.


이때만해도 나는 간절히 빌었다.

진단 받은 충격으로 잠시 상황이 악화된 것일 뿐일 거라고. 다시 엄마는 괜찮아질거라고, 우리에게 아니 엄마에게 이런 시련이 올 리가 없다고.

증조부모님 영정 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간절히 빌었다.




이제 나는, 그 영정 앞에서 화를 낸다.

왜 우리 엄마냐고. 무슨 잘못을 했냐고.


세상 모든 신에게 화를 낸다.

까짓거 벌 주고 싶으면 주라하지.

그따위 합당하지도 않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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