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잘 끝났지만 회복이 되어가는 과정은 통증과의 싸움이어서 밤낮없이 잠을 청해야 했다. 깨어 있을 시간에는 수술한 부위의 유착을 막고 빠른 회복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병실복도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병실 내 TV 존재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좀 살만해졌는지 병실에 TV가 없는 것이 슬그머니 불만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반복되는 루틴에 무료해지고 퇴원이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TV를 보기 위해 한 번도 이용하지 않던 휴게실을 가기로 했다. 휴게실까지는 지척이었지만 링거걸이를 밀며 가다 보면 통증이 밀려오는 데다 출입을 할 때는 바코드를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어서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날은 드라마 본방사수를 향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대부분의 병실이 어둑해진 밤 10시 , 조용히 나와 링거걸이를 밀면서 어기적 어기적 휴게실까지 걸어 나갔다. 휴게실에 도착했을 때는 한 분만이 TV 아래에 앉아 있었다. 나 같은 분이 또 계셨구나. 혼자 보는 것보다는 둘이 보는 것이 나을 거란 생각을 하며 좀 떨어진 곳에 앉았다. 문제는 TV가 작았고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배도 아픈데 목까지 아파하며 볼 일인가 했지만 드라마 마니아에게 이런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녀와 나는 초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환자 둘은 눈물의 여왕을 보기 시작했다. 김수현과 김지원의 달콤 살벌 위기의 부부가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사랑을 찾는 이야기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인기 드라마, 눈물의 여왕. 시한부 홍혜인과 남편 백현우가 마지막 희망을 품고 독일로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홍혜인이 탄 차가 사고가 나고 목격한 백현우가 온몸을 던져 차문을 부수며 오열하는 장면, 수술 전 애틋한 장면 등 애절한 눈물연기로 심금을 울리다 못해 세포의 균열이 일어날 만큼 감정이입이 과해질 시점.. 나는 더 이상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TV 바로 아래에서 목이 뒤로 젖혀진 채로 꼼짝도 안 하는 그분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는 점점 더 심하게 흔들렸고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 역시 진즉에 눈이 그렁그렁한 채로 눈물 콧물을 쥐어짜고 있을 터였지만 이미 눈물 타이밍은 물 건너 간지 오래였고, 울고 있는 그녀만을 보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높이 매달린 TV를 보며 울고만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그 환자분의 모습이 왜 그리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워 보였는지. 저 모습이 내 모습이었는데.. 이제 나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드라마에 푹 빠져 우는 나이는 지난 것인가 하는 별 시답잖은 생각마저 들었지만 흰머리 오십 대 아줌마도 드라마를 보며 소리 내어 엉엉 울 수 있기에 나이 어쩌고 운운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드라마에 집중을 해보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할 수없었다. 슬픈 장면이 지났음에도 쉼 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는 그녀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더 아픈 일이 있었을 수도.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명분을 드라마가 내어 준 것일 수도. 드라마의 여운이 눈물을 멈추지 못할 만큼 깊었을 지도. 타인의 눈물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이런저런 생각과 촉촉해진 마음이 뒤엉킨 채로 병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측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잠자리에 들었다.
일상의 희로애락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는 TV멍을 가지곤 한다. 특히, 거울을 보 듯 차분히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와 적절한 해답을 주기도 하는 드라마를 즐겨 보다 보니 언젠가부터 자칭 드라마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드라마를 보며 고구마 몇 개를 먹은 듯 속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울고 웃고, 분개하면서 속이 뻥 뚫릴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일이 더 많았다. 어느 지점에서 위로를 받았는지는 기억의 끝이 짧아서 세세히 헤아리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현실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나의 고단했던 삶이 드라마의 삶일 수도, 극속의 치열했던 그들의 삶보다 현실이 더 극한의 상황일 수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처와 위로를 받았던 수많은 지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내게는 가상이든 현실이든 어떤 기쁨, 어떤 슬픔 하나하나 소홀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의 한밤중 TV 동기가 쏟아내던 눈물을 내 마음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 같다.
퇴원 후 재방송부터 챙겨 보았다. 그녀처럼 나의 눈물주머니도 터져 버렸다. 죽음을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기적처럼 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눈물, 사랑이 담긴 가족들의 보살핌에 울컥한 눈물, 마침내 사랑을 찾은 부부를 향해 응원하는 달콤한 눈물들은 시도 때도 없이 흘렀다. 그리고 길고 긴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눈물도 드라마를 타고 덤으로 흘려보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