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나는 중이다. 아들에게 포토샵 기능과 도구사용법에 대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도무지 진전이 없다. 노트북을 열기까지의 시간은 운동을 계획하고 시작하기만큼이나 오랜 뜸을 들여야 하고 막상 앞에 앉고 보면 벽을 바라보며 면벽수행을 하고 있는 듯 하나 마음은 갑갑하다. 눈앞에 보이는 온갖 기능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기만 하고 설명을 들었던 순간의 잔상만 남으니, 오십 중반의 도전은 너무 무모했던 것인지.
디지털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손맛의 아날로그 감성에 충실했던 때가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온갖 재료들을 사서 모으고 그 재료들을 사용하는 재미에 깊이 빠진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문명이 서둘러 변화하더라도 꿋꿋하게 나의 길을 갈 것처럼 포부도 대단했었다. 하지만 다짐도 무색하게 이쪽도 저쪽도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세월의 무게만 더해졌다. 지독한 기계치의 변명일 뿐이었다.
미다스의 손이 아닌 마이너스의 손, 컴퓨터를 켜고 나서 몇 번 클릭했을 뿐인데 화면이 멈춰 버리거나 오작동을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도대체 뭘 만진 거냐고 타박을 하는데 낸들 알겠는가.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고 작은 메시지창이라도 뜨면 전문을 읽어보기 전에 창을 닫고 나와 버리기 일쑤였다. AI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에 컴퓨터와 여전히 씨름 중인 사람은 나뿐만일까.
그나마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아이패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한 변화와 발전이었다. 아날로그 지향이라는 그럴 듯 한 말속에는 기계와의 간극을 좁히고 싶지 않은 바람이 담긴 두려움이 숨어 있다. 다행히 프로크리에이트라는 앱의 기능을 배우면서 그림과 글에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종이와 붓 그리고 연필만의 세상에서 벗어나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친해지는데 적잖이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설프더라도 최소한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수십 번의 삽질 끝에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 노력 덕분에 포토샵도 도전해 보고 싶은 용기가 생긴 것이다.
터닝포인트는 12.3 계엄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말과 달리 우리 가족에게는 큰일이 일어났다. 외국투자사의 최종 투자를 목전에 두고 샴페인을 터뜨릴 준비를 하던 남편의 직장은 12.3 계엄직후 바로 투자 철회를 하는 바람에 운영을 멈춰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남편과 동료들은 실직을 했다. 회사의 운명이 최종 투자에 달려있을 때였다. 축하모임을 하러 나갔다가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온 12월 13일의 금요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계엄이 남긴 두려움과 불안만으로도 헤어나지 못하는 나날이었는데, 휩쓸려 버린 일상이 암담하고 막막했다. 하지만 계속 망연자실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기에 가족회의를 하면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그때 아들이 제안한 것은 포토샵 공부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엄마에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적절한 제안을 해준 셈이었다. 썸네일을 만들고 사진 편집을 하며 홍보물 포스터를 만들면서 소소하게 일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아들의 제안은 솔깃했다. 당연히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디지털 울렁증이 심하다 보니, 몇 날 며칠 동안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회로를 돌리고 나서야 시작을 했다.
의욕이 차고 넘쳤던 현실은 반전을 주거나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포토샵프로그램으로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이다. 사진을 불러오는 것조차 헤매고 있는 한심한 수준은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멀리할 정도로 무기력이 함께 오기도 하지만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다는 의지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답답하고도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보려고 시작을 했다면 이제는 긴 세월 동안 그럴 듯 한 핑계로 스스로 쌓아 놓은 벽을 깨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단지, 포토샵공부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기네스북에 오른 일본의 108세 이용사 할머니 기사를 보았다. 여전히 현역으로 일을 하시고 120세까지 이용사일을 하는 게 꿈이라고 하셨다. 물론 90년 동안을 해오신 숙련된 달인의 손과 감각, 장인정신은 감히 따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장인의 손길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이 어린 친구들의 감각에는 못 미치더라도 누가 알겠는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내게도 기회가 올 수 있을지도. 같은 설명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도 답답한 엄마를 포기하지 않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포기는 없다. 오늘도 10년, 20년 후의 꿈을 야무지게 꾸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