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집안은 이맘때가 가장 춥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래저래 어수선한 날들을 보내서인지 올 겨울은 더 추웠다. 한 겨울처럼 실내 화목난로에 나무를 활활 태우려니 게을러지기도 하고, 난방을 돌리자니 쌀쌀한 겨울 한기를 품은 봄볕에 망설여지기도 한다.
마음 같아서는 온 집안이 뜨끈뜨끈 달아오르도록 보일러 온도 조절기를 한껏 돌려놓고 싶지만, 가던 손이 멈추는 이유는 난방비 걱정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매해 주택살이 월동준비의 일 순위는 마당 한켠에 장작을 쌓아 놓는 일이었다. 물론, 난로의 열기가 집안 구석구석을 책임지지는 못하지만 이글거리며 타는 불꽃만 보더라도 몸의 체감온도는 사뭇 달라져 있으므로 월동준비의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아궁이의 불로 난방을 해결했다. 부엌에는 아궁이가 두개 있었는데 한쪽은 밥과 국을 끓이는 두 개의 작은 솥을 담당했고 다른 한쪽은 사용할 물과 소여물을 끓이는 두 개의 큰 솥을 담당했다. 솥 안의 것들이 펄펄 끓을 때쯤에는 구들을 통해 전달되는 열로 바닥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는데, 열기가 시작되는 아랫목은 엉덩이가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코는 시리고 이불속 엉덩이는 불날 듯 뜨거운, 웃풍이 심한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해가 일찍 저문 겨울 저녁나절이면, 집마다 굴뚝에서는 솜뭉치 풀어헤친 듯 희뿌연 연기들이 뿜어져 나왔다. 부모님도 아궁이에 불을 피우셨다. 해가 넘어갈 즈음 집 안 난로에 참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는 지금이 그때와 다른 듯 닮아 있다. 단지, 밥은 전기밥솥이 하고 음식은 가스레인지에서 조리를 하며 엉덩이를 들썩여야 할 정도로 뜨거운 방바닥이 없을 뿐이다.
아궁이 앞에서 무릎을 오므리고 턱을 괜 채로 앉아 있다 보면 잠이 스르르 몰려오기도 했다. 너울거리는 불꽃에 이끌려 넋을 놓고 보는 요즘과 다르지 않지만(불멍이라고들 한다), 불 앞에 쪼그려 앉아 해맑게 잠이 들던 어린 그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쓸데없는, 쓸모없는, 쓸모 있는 생각과 근심들을 벌건 불속으로 밀어 넣으며 위안을 받는 나이가 되었다.
옷깃을 목 끝까지 여미어야 할 정도로 뼛속을 파고드는 바람이 시린 3월은 소란스러웠던 겨울을 밀어낼 준비를 하며 봄을 맞이하고 있다. 몇 겹의 옷을 걸쳐도 여전히 발이 시리고 몸은 오싹하다. 그러니 3월이 가기 전에 바짝 메마른 나무들을 서둘러 태울 것이다. 곧 다가 올 찬란하고도 진정한 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