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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소연 Mar 13. 2024

애견유치원에서 일하는 삶

<3년 차 훈련사의 직업만족도>

사람들에게 내 직업을 소개하면 신기해하곤 한다. 반려견 훈련사라는 직업이 아직 누군가에겐 생소한 직업인가 보다.


오늘은 훈련사로 애견유치원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짧고도 긴 3년을 일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강아지와 보호자님들도 생겼다. 힘든 점도 많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끼는 직업인 반려견 훈련사.


이 글은 그 순간들을 기록하는 내 개인적인 일기이자, 훈련사라는 직업이 더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역량이 늘었다고 느끼는 순간


강아지의 성향에 따라, 같은 훈련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라 머리로는 이해했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훈련을 해보니 성향을 파악하는 일도 다른 방식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웠었다.


토리는 수업하기 까다로운 아이였다. 소심한 것도 아니었고, 산만한 편도 아니었다. 다만 잘 따라오다가도 간식을 더 이상 안 먹는다거나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수업을 중단하는 일이 많았다.


토리와 호흡을 맞추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먼저 토리는 텐션을 끌어올려주며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업 시작 전에 장난감놀이나 술래잡기 놀이를 해주고 시작해 주었더니 적극적으로 따라와 주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칭찬의 싸인을 하이톤으로 밝게 해 주어야 끝까지 텐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간식을 쉽게 질려하기에 주기적으로 기호성 좋은 간식들로 바꿔달라고 보호자님께 요청드렸다. 항상 교육 순서가 되어도 미적거리던 토리는 이젠 간식봉투 소리만 들려도 교육장 앞으로 달려간다.


토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 주어지면 포기하거나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교육 단계를 세분화해주어 난이도 조절을 해주었다. 어떤 훈련이든 자신감을 가지고 따라와 주는 토리를 보면 참 뿌듯하다.


훈련사는 늘 공부하고 배우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내 초반 훈련모습과 비교해 보면 강아지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눈이 길러졌다. 조금씩 발전하는 나의 모습은 이 일을 계속하는 동기가 되더라.




강아지의 변화를 지켜본 순간


초코는 12살이 된 노견이다. 원래는 다견가정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가족 강아지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나이가 든 탓인지 가족을 떠나보낸 탓인 건지 초코가 쾌활함을 잃었다고 보호자님께서 울먹거리셨다. 예전처럼 격하게 가족들을 반기지도 않고, 좋아하던 산책도 거부했다.


강아지도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초코의 증상은 꼭 우울증 같았다. 등원 첫날, 유치원에서 활동을 시켜보아도 구석으로 숨으려고만 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던 보호자님은 실망하셨다.


나는 초코 보호자님께 되도록 일정한 요일과 시간에 등원하기를 권유드렸다. 우울 증상이 있는 강아지는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활동은 우울증에 도움이 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는 되려 스트레스만 줄 수 있다. 그 점을 우려해서 등원 수를 서서히 늘려가자고 상담드렸다.


초코는 교육시간에 정규 프로그램을 하기에 앞서, 교육장에 적응하는 시간을 들였다. 교육장에 들어가서 같이 뛰어놀고 예뻐해 주다가 나왔다. 교육장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 첫 스텝이었다. 처음부터 어려운 교육을 시키면 부담되고 자신감도 하락될 것이기에 놀이교육을 주로 진행했다.


초코가 유치원을 다닌 지 약 한 달이 될 때즈음, 보호자님께서 음료수와 함께 편지를 유치원에 전해주셨다. 초코가 많이 밝아져서 산책도 즐겁게 나가고 실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감사인사를 전한 것이다. 유치원에서도 훨씬 활달해져 이제는 차분해질 수 있는 매너교육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선생님들끼리 농담을 하곤 한다.




보호자님들께 진심이 통하는 순간


1년 정도 다닌 애견유치원을 갑작스럽게 그만두고 이직을 하려던 시점이었다. 시원섭섭한 기분으로 다음 출근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매니저님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다음 아니라, 혹시 마리 보호자님께서 개인적으로 연락드리고 싶다고 선생님 연락처 부탁하시는데 괜찮을까요?


나는 조금 고민을 하다가 괜찮다고 대답했다. 운영진과의 불화는 속상했지만 수업을 맡던 강아지들에 대해서는 아쉽고 그리웠기에 나도 연락을 드리고 싶었다. 매니저님은 다른 보호자님들도 나를 찾으셨더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마리 보호자님은 마리가 낯선 손님들에게 공격적인 문제 행동을 가지고 있어 고민이셨고, 나와 상담을 오래 하면서 교정해 주려고 노력하시던 분이다. 이러한 문제행동은 방문훈련이 교정에 더 효과적이지만, 상담시간에 알고 있는 훈련방법이나 팁을 설명드려 나도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을 알아봐 주셨는지 마리 보호자님은 그동안의 감사인사를 주시며 다른 애견유치원으로 마리를 보낼까 하는데, 마침 그곳에서 구인을 한다는 정보까지 주셨다. 계속 나에게 마리를 맡기고 싶다고 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를 믿어주시는 보호자님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 뒤로도 sns를 통해 그동안 감사했다고 연락 주신 보호자님들이 종종 계셨다. 그런 연락을 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하고 역시 훈련사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이 공부하여 발전하고, 강아지와 보호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이로운 훈련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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