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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윔 Nov 24. 2024

나 자신으로 사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모닝페이지의 본질

데미안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Ich wollte nur das leben, was von innen aus mir heraus wollte. Warum war das so sehr schwer?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5년 전 데미안을 읽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책장에 고이 모셔놓았다. 이제는 첫 구절이 완벽히 마음속에 와닿는다. 헤르만 헤세도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토록 어렵게 느꼈다니, 안심이 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뇌했던 것이다.


일단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일 것이다. 내면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정답이다. 그러나 나의 소리는 너무나 작고 제멋대로이며 예측 불가능하기에, 매일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날은 아무 일 없고, 어떤 날은 영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그 조용한 목소리를 듣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것들 중 하나가 모닝페이지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데이트에 나온 방법이며, 미라클모닝의 유행과 함께 유명해졌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드는 생각을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세 쪽을 쓰면 된다.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해냈다. 그러나 지속하기 힘들었다. '대체 이걸 왜 해야 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러나 달리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했다. 그러다 나는 점점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느 날 나는 모닝페이지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다.


모닝페이지는 그것을 어김없이 드러내고 그 감정과 마주하게 만든다. 결국 모닝 페이지와 불안한 대화를 하느니 차라리 모닝페이지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컨대, 갖가지 극단적인 감정이 들 때마다 모닝페이지를 피하고 싶어진다. 모닝페이지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 아티스트 웨이

정말로 그랬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것들이 손 끝으로는 너무나 쉽게 흘러나왔다. 아무도 내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았는데, 종이는 조용히 나를 흡수해 주었다. 종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행위의 첫 번째 본질은 바로 글쓰기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글을 쓰는 행위의 반복일 뿐이다. 글쓰기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5년 전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 준 것도, 성과 없는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을 견디게 해 준 것도 내가 써 놓은 글들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창출할 수 있는 가치의 절반은 포기하는 것이다. 글쓰기만큼 돈 안 들고 효과가 확실한 것도 없다. 매일 강제로 글을 쓰니 치유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중요한 시기에 모닝페이지는 정신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낸다. 모닝 페이지는 우리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조정해 준다. 만일 우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모닝페이지는 코스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알려줄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계속 채워나가기만 한다면 잘못된 표류를 깨닫고 다시 원래의 항로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쓰다 보면 나의 상황, 고민, 꿈 같은 것을 명확하게 보게 된다. 결국 모닝페이지란, 매일 아침 인생의 나침반을 조율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졌고, 우리를 손쉽게 휘두른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머릿속을 뛰어다니는 온갖 원숭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삶을 잃어버리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다. 처음에 시작할 때 회의를 느낀다. 이걸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를 느끼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러나 처음부터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시간의 축적 속에서 저절로 떠오른다. 우리는 모닝페이지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지 않는다.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시간 자체가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니 모닝페이지라는 말이 애매하게 느껴진다면 "나침반 조율하기, 삶의 방향 설정하기"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일은 너무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인생이란 결국 나의 길을 만들고 그 위를 걷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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