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관의 본질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직장에서는 군중에 휩쓸려 음식 같지도 않은 배달 음식 팟에 강제로 투입된다. 그다지 커피를 먹고 싶지 않은 날에도, "A 씨는 왜 커피 안 마셔요?"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억지로 커피를 사 온다. 내 몸을 갈아 열심히 일할수록 나의 월급이 아닌 상사의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왠지 억울한 마음에 일을 대충 한다. 그것은 나에게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해가 떨어진다. 하루는 사라지고, 집에 오면 나의 저녁도 사라져 있다. 뒤돌아 보면 나의 인생도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불행히 살고 싶지 않다면 멈추어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결국은 '돈'이다. 아무리 고상한 척을 해도, 돈 때문이라는 것을 빨리 인정할수록 앞서나갈 수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진부한 말은 그만하자. 돈으로는 시간도 행복도 선물도 여유도 살 수 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대체 무엇이 있을까. 자, 결국 인생은 '돈!'으로 귀결된다.
나도 이 불편한 정답에서 벗어나고자 무수한 발버둥을 쳤지만, 항상 눈을 떠 보면 제자리에 있었다. 나의 모든 괴로움과 고민은 전부 돈 이야기였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앞에서 돈을 버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 팔기, 자산시장에 참여하기, 그리고 사업으로 나의 것을 팔기. 뒤로 갈수록 어렵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서대로 경험하게 된다. 나도 죽을 만큼 노동이 싫어 주식을 건드렸다. 그러나 한 달 월급만큼의 돈을 잃었다. 분명 돈을 벌어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을 얻기 위해 시작한 주식이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지 마자 주식창과 인사하고, 밤에는 주식창이 나를 꿈나라로 떠나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인생이 점점 불행해지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정도가 노동보다 심각한 것을 느끼며 나는 주식도 관두었다.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구루들이 그토록 오래 부르짖었던 적립식으로 돌아가기까지 거하게 수업료를 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노동시장에 순응하며 일을 했다. 그러나 정말 죽을 만큼 싫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 내 옆자리 B는 썩 괜찮은 얼굴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너는 출퇴근의 삶이 안 힘들어?"
어느 날은 내가 물었다.
"그냥 하는 거지."
나는 그때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의 종류에 대한 역치가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점이다. 나는 죽기보다 싫은 이 일이,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다니.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고통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류는 모두 다르다. 나는 논문 읽기를 꽤나 재미있어 하지만, 동기 C는 그게 또 죽기보다 싫다고 했던 것처럼.
그때 알았다. 어떤 일을 할까?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답하는 일과 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