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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Oct 27. 2020

새 이야기는 새 노트에 새 펜으로

이제는 되돌아가는 것보단 앞으로 가는 게 더 빠를거야



이건 작년 여름의 이야기야.


그때 난 좀 막막했던 것 같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무기력하다고 했어.

아닌가,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했나.

습작한 지는 4년이 됐는데,

모르는 것만 많아졌거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출구가 없는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거든.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집에 갈 거라고 했어.

그러자 걔가 그런 게 어딨녜.

자기는 이제 어린이집에서 아이 하원 시키면

그 때부터 놀이터로 끌려가서

이 땡볕 아래 두 시간 넘게 있어야 하는데

왜 혼자 집에 가냐고.

나는 도서관 가서 글을 쓰라고.


- 아니, 나는 노트북도 없고 펜도 없는걸?

- 도서관 문구점에서 팔 거 아니야.


어...그런가?




그 날 나는,

친구와 헤어지고 정말 도서관에 갔어.

지하 매점에서 1500원을 주고 노트를 샀고.

500원을 주고 볼펜을 샀지. 

집에 2만원짜리 가죽 노트와, 2천원자리 펜이 있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자리에 앉아 노트의 비닐을 뜯는데, 너무 설레더라.

새로운 이야기들이 펜 끝으로 흘러넘치는 것 같았어. 

도서관 문을 닫는 밤 11시까지 자리에 앉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썼고.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전율을 끊고 싶지 않았어.

새 노트 20여장이 그냥 메워지더라. 




이제 문을 닫는다는 방송에, 집으로 가려고 도서관을 나왔는데 

밤공기는 상쾌하고 마음은 너무 가벼웠어.

끈적한 더위는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때야 깨달았어.

나, 누가 등 떠밀어 주길 바랬구나, 하고.


무기력하다고 말했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던 거야.

오히려 나는 끝을 보고 싶었던 거야.


어떻게든 터널을 빠져나가고 싶지만,

사방이 어둠이라 대체 어디가 출구인지 모르니

그저 막막했던 거야.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이쪽으로 가면 길이 나오나?

모르니까 답답함에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 그냥 계속 해.

그 말을 기다렸던 거야.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뭐라도 나온다고,

그러니까 하던 대로 계속 걸어가 보라고

누가 좀, 얘기해주길 바랬던 거야.



이제 더 이상 출구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게 됐어.

내가 계속 어디로든 간다면, 뭐든 나올 테니까.

그게 뭐라면 어때, 내 발이 닿는 곳이 나의 출구가 되겠지.  

이제는 되돌아가는 것보단

앞으로 가는 게 더 빠른 걸 알게 됐거든.


그렇게 그 해 여름, 나는 어떤 장편 소설 1부를 썼어.

가을엔 소설을 완성하겠다고 치앙마이로 떠나.


1년 후, 올해 가을.

나는 그 소설로, 어떤 출판사와 미팅을 하게 돼.



이제는 빛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걸어갈수록 그 빛은 더 커질 것임을 알았지.


출판사와 미팅 후,

나는 또 새로운 펜과 새로운 노트를 사.


그리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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