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끼어들 틈도 없는 성실한 몸의 습관
우리의 연결점을 궁금해하고 공감대를 찾고 싶어
내 삶의 포커스는 크게 글이거나 사람인데. 사람에 집중하는 시기에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대화하고 그들의 사고를 탐구하고 학습한다. 왜 이렇게 생각하지? 왜 그렇게 말하지? 왜 나한테 이러지? 왜 저러지? 궁금증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연결점을 궁금해하고 공감대를 찾으려 한다. 물론 이런저런 마음이 얽히면 충돌도 일어나고 가끔은 파국도 벌어진다.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기도 하고 사람들 때문에 완연한 행복감도 누린다. 아 나는 정말 사회적인 사람이구나, 사람들은 너무 소중하다고 느끼다가도 내가 수집하고 채집한 데이터들이 잔뜩 쌓이면 이걸 쏟아놓을 곳이 필요하다. 그럴 때면 이제 사람들 틈을 떠나서 나만 있는 곳으로 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내 의문과 궁금증들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답을 찾아낼 차례다. 이때는 내 방과 컴퓨터와 노트가 제일 중요하다. 사람들아 끝나고 만나.
중요한 것은 완전한 몰입.
나의 의문과 내가 찾아내려는 답이 제일 중요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시기에는 내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글로 향한다. 여기저기서 가져온 나의 질문에 나만의 답을 찾는 시기다. 종일 골똘히 고민만 하기도 하고 가끔은 생각이 지나처서 앓아눕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영화나 OTT를 보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노트를 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완전한 몰입. 나의 의문과 내가 찾아내려는 답이 제일 중요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외부가 아닌 내 안에 푹 빠져서 무언가를 찾아내려 애쓴다.
글은 나의 표현 수단이기에 근본적으로는 나의 의구심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운동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쉴 때도, 책을 볼 때도, 노래를 들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모든 것의 소실점은 하나. 글이다. 내가 오늘을 사는 거 자체가 내가 찾아낼 해답을 위해서야. 그걸 글로 정리해 내기 위해서야. 나는 답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인데 실상은 맨날 똑같은 일들을 반복한다.
운동. 휴식. 상상(사색/생각/사유). 카페. 작업.
독서. 영화. 식사. 청결(청소). 연락. 노래.
크게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중 제일 중요한 거 우선순위 3개를 꼽자면 운동, 상상, 작업. 이 3개는 무조건 하루에 매일 하는 일이다. 사실 청결이나 식사는 너무 기본적인 일이고. 나의 하루는 3개의 영역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며 진행한다.
무척이나 단조롭다. 오전에는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정리를 하고 저녁에는 카페에 와서 작업을 한다. 순서는 바뀌기도 한다. 오전에 정리를 하고 운동을 가거나 오전에 운동을 가거나 오후에 카페서 작업을 하거나 저녁에 정리를 하거나 뭐가 됐든 운동, 생각, 작업 이 3가지는 매일 한다. 마치 직장인이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는 것처럼. 해야 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종종 하기 싫은 그 점까지 닮았다. 그렇지만 기어코 해내야 한다는 점까지.
Q. 상상이나 작업은 알겠는데 운동은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건데?
기본적으로 글은 몸으로 쓴다. 체력이 아주 중요하다. 밤늦게 잠들었더라도 아침에 달리러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소설가다. 각종 체육대회나 운동대회에 참여하는 창작자가 있다면 이것도 높은 확률로 소설가다. 소설가에게 몸은 절대적인데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굉장히 명확하게 나타난다. 아무리 생각이 많고 쓰고 싶은 게 머릿속에 꽉 차있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에. 몸과 글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돼있어서 둘 다 지속적으로 트레이닝해야 한다. 일주일을 밤 새도 멀쩡하던 시기가 지났음을 인정한 사람들이 몸을 관리한다. 나도 그렇다. 내 몸을 트레이닝해서 앞으로도 쭉 앉아서 글 쓸 수 있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 기술이 발달해서 내 뇌파를 해석해서 알아서 써주기 전에.
눈 뜨면 귀찮지만 그냥 일어나서 운동 간다. 스트레칭하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간다. 하루종일 책 읽고 둥실둥실 떠오르는 생각을 잡느라 하루를 보냈더라도 컴퓨터 들고 카페로 나온다. 그냥 나간다. 스트레스 받아 하면서 나간다. 하기 싫어하면서 나가고. 집에 있어봤자 안 하는 걸 알아서. 잘 때 후회하면서 잠 못 들걸 알기에. 일단 나가서 환기라도 하고 뭐라도 쓰는 거다. 한 줄이라도 좋고. 지금도 봐, 원고 쓰기 싫다고 이러고 있다. 이 글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다. 이러면서 성나서 날뛰던 마음을 잠재운다. 다행히도 내 마음은 문장으로 날뛴다. 이렇게 힘을 빼놓는 것이다.
부담과 압박과 죄책감마저 글로 날려버리기
사실 단조로운 날들도 감사히 잘 지내다가도 오늘처럼 갑자기 지겨워지고 하기 싫어지는 이유는 정해져 있다. 부담, 압박, 죄책감. 마음의 문제다. 원고를 거의 일주일째 보내지 않았고 피디는 며칠째 연락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놔두는 게 더 불안해. 빨리 원고 보내고 싶은데 어제 쓴 것은 고작 350자.
새로운 원고를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글이 나오지 않는 압박감과 어쨌든 원고를 안 썼다는 직무유기 비슷한 죄책감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마음이 날뛴다. 늘상 잘해오던 것도 하기 싫어진다. 마음이 이렇다. 그래서 뭐든 쓴다.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로 부담을 덜고 죄책감을 날릴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슬슬, 캄다운 된 마음에 물어보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할 일을 해볼까?
몰입으로 들어가는 문, 루틴.
하기 싫다는 것은 생각이 한다. 의식이 한다. 뇌에서 시작한다. 그냥 쉬고 싶고 늘어져있고 싶고 이 편한 상태에서 변하고 싶지 않다며 버팅긴다. 그냥 집에서 노래나 듣고 침대서 누워나 있자 하고 유혹한다. 뇌는 쉬고 싶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에너지 쓰기 싫어한다. 특히나 오늘처럼 뭔가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느라 새벽 4시에 잠들어버린 날이면 뇌는 연차 내고 싶어 한다. 그래도 운동 가서 걷고 뛰었다. 피곤하니까 어제의 반 정도만. 원하는 대로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선전포고 하는 거다.
재미있게도 그냥 매일 눈뜨면 나가서 운동하는 것을 딱 2주 했을 뿐인데 몸 상태가 너무나도 좋아졌다. 달리는 것을 싫어하는데 프로그래밍대로 걷다 보니 어느새 달리고 있었다. 숨도 차지 않고. 그리고 어제는 풀업에 매달려서 다리를 들어 올리는 복근운동을 했다. 그냥 매달려있었는데 됐다.
내 몸에게 자신의 신체적 기능에 몰입할 시간을 주었더니
알아서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 사이에 내가 한 것은 하나다.
운동을 가는 것.
매일 가는 것.
눈 뜨면 가는 것.
가기 싫어도 가는 것.
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원고 열면 쓴다.
쓰기 싫다고 엄청나게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파일을 열면 뭔가를 쓰고 있다.
이때도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다.
작업을 하는 것.
하기 싫어도 컴퓨터라도 여는 것.
일단 컴퓨터 열고 딴짓하더라도 컴퓨터는 여는 것.
투덜거리더라도 백지에 뭐라도 쓰는 것.
울고 싶어도 컴퓨터를 여는 것.
어떤 마법이나 주문 같은 건데, 이걸 몰입이라고 부른다.
어떤 의식이 끼어들 틈도 없이 움직인다. 그 행위만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루틴의 힘이다.
일단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냥 하는 것.
하기 싫어도 그래도 해내는 것.
의식의 유혹은 떨쳐내고 습관대로 하는 것.
그렇게 바로 즉각 몰입할 수 있는 문이 되어주는 것.
그 문이 루틴이다.
그러니 루틴의 다른 이름은 성실함이라 하겠다. 성실하게 살다 보면 뭐라도 된다. 적어도 몸은 좋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