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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요리한 프로크네, 자식을 먹은 테레우스

by 야담

1. 신화 이야기




트라키아의 왕 테레우스는 전쟁 중 아테나이를 도운 공으로 왕 판디온의 딸 프로크네와 정략결혼을 맺는다. 그러나 이 결혼은 처음부터 불길함을 예고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참석했을 거룩한 결혼과 가정의 수호 여신 헤라,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 아름다움의 여신 카리테스 세 자매가 모두 불참했고 대신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신들의 결혼 축복이 부재한 상황은 신화 속에서 언제나 파국으로 향하는 징조였다.



그러나 처음 몇 년간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프로크네와 테레우스는 아들 이티스를 낳고 5년간 가정의 평온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크네는 남편에게 친정에 가서 여동생 필로멜라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테레우스는 아테나이로 향하고 필로멜라를 본 순간 단번에 그녀에게 욕정을 품는다. 귀국길에 그는 필로멜라를 숲 속으로 데려가 겁탈하고 이후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그녀의 혀를 잘라 침묵시킨 채 외딴 장소에 가둬버린다. 그리고 프로크네에게는 여동생이 병으로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혀를 잃은 필로멜라는 침묵을 강요당한 채 지내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수놓기 시작한다. 흰색 천 위에 붉은 실로 범죄의 전모를 자수한 그녀는 이를 하녀를 통해 프로크네에게 전달한다. 메시지를 읽은 프로크네는 격분하여 동생을 몰래 구출해 궁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테레우스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복수의 방식은 신화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하고 잔인하다.



프로크네는 자신이 낳은 아들 이티스를 죽인 뒤 그의 살로 요리를 만들어 테레우스에게 먹인다. 식사를 마친 테레우스가 아들을 찾자 그녀는 접시 대신 아이의 머리를 그 앞에 내민다. 진실을 깨달은 테레우스는 절규하고 그 순간 세 인물은 각각 동물로 변한다. 테레우스는 밤의 사냥꾼 올빼미로, 프로크네는 밤에 울어대는 나이팅게일로, 필로멜라는 혀가 잘린 제비로 변한다. 이들은 다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한 채 숲과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새로이 살아가게 된다.




2. 신화와 문학




이 끔찍한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 비극이라기보다 국가 간의 갈등, 배신, 그리고 몰락이라는 구조를 품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역사소설과 비극문학에 자주 인용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이 있다. 이 작품은 백제의 멸망과 의자왕의 3천 궁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왕조의 붕괴가 개인의 욕망과 정치적 오판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테레우스와 프로크네의 이야기처럼 백제의 몰락도 결국은 지도자의 선택이 국가를 파국으로 이끄는 비극의 서사로 전개된다.



또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트로이의 멸망도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파리스의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전쟁은 결국 하나의 도시국가를 소멸시킨다. 트로이 전쟁이 신들의 계획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선택과 그것의 정치적 결과를 중심으로 서사가 흘러간다는 점에서 테레우스 신화와 닮아 있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묘사되는 아틀란티스 역시 유사하다. 문명의 정점에 이른 도시가 교만과 타락으로 인해 신들의 심판을 받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이 또한 인간의 욕망과 오만이 공동체 전체를 몰락시키는 신화적 구조를 반영한다. 테레우스 신화는 이처럼 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원형 서사로 인간 욕망의 제어 실패와 그 결과로써의 파국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3. 고찰




이야기의 구조를 신화적 은유로 읽을 때 이 서사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고대 사회의 국제 정세와 도덕적 경계, 공동체적 질서를 반영한 서사로 확장된다. 테레우스는 트라키아라는 전사 중심 국가의 의인화이며 신 아레스의 아들로서 폭력성과 충동을 상징한다. 반대로 프로크네는 아테나이 출신으로 문명과 이성의 상징이며 정략결혼이라는 외교적 제스처의 일환이다. 이 결합에서 탄생한 아들 이티스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두 국가 간의 결속, 즉 조약을 상징하는 존재로 읽힌다.



그러나 이 결속은 곧 파탄을 맞는다. 테레우스가 필로멜라를 겁탈하고 그녀의 혀를 자른 사건은 단순한 성적 범죄를 넘어선다. 이는 곧 조약의 파기, 약속의 배신, 문명에 대한 폭력이다. 필로멜라는 문명국가 아테나이의 무방비한 신뢰이자 순수성으로서 그녀에 대한 공격은 전쟁이 아니라 기만에 의한 침공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건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두 국가 간 동맹을 허물어뜨리는 균열의 서막이다. 결국 두 국가는 형식상 동맹 상태였지만 테레우스는 그 관계의 약점을 이용해 무력 아닌 욕망으로 상대를 침범했다. 조약이란 외교적 명분을 앞세운 그들의 결혼은 사실상 무력보다 더 깊은 신뢰를 전제로 했으며 필로멜라의 파괴는 그 신뢰의 근간을 뒤엎는 행위였다. 침략은 전면적 군사행동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신화는 그보다 은밀하고, 더 비열한 방식의 침입이 존재함을 경고한다. 이는 외교의 실패가 아닌 외교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가장 비윤리적인 범죄이며 공동체 내부 질서의 붕괴로 직결된다.



이 균열은 은폐되지 못한다. 직조된 진실은 결국 프로크네에게 도달했고 감춰진 폭력은 더 이상 침묵 속에 머물 수 없었다. 프로크네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 그의 살로 요리를 만든 뒤 그 음식을 테레우스에게 먹인다. 평온을 가장한 식사 끝에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테레우스 앞에 내던지고 진실을 고발한다. 이 복수는 단순히 개인적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외교적 배신에 대한 응징이자 거짓 평화에 내린 최후의 심판으로서 조약의 파기이다.



결국, 이 복수는 개인의 윤리적 분노를 넘어 국가적 관계의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는 선언으로 기능한다. 그 결과 이 사건은 트라키아 왕실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조약의 파기(이티스의 죽음)로 테레우스는 무너지고 국가 또한 무너지며 두 나라 사이의 동맹은 복구 불가능한 파탄 상태에 이른다. 트라키아는 이후 그리스 문명 안에서 야만의 땅으로 전락하며 아테나이의 문명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타자의 위치에 고정된다. 한 인간의 충동과 침묵 위에 세워졌던 관계는 진실이 드러난 순간 무너졌고 공동체 전체가 그 대가를 치렀다.


한편, 이 이야기에서 또 하나의 구조가 병렬적으로 작동한다. 바로 목소리를 잃은 자의 저항 그리고 침묵을 언어로 바꾸는 고대적 표현 방식이다. 더 나아가 혀를 자른 행위는 단지 범죄의 은폐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말할 권리, 말할 수 있는 자격, 나아가 존재 자체의 부정이다. 테레우스는 그녀의 몸을 통해 동맹을 파기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혀를 통해 기억과 기록의 가능성까지 봉쇄하려 했다. 이는 침묵의 강요이자 언어의 제거이며 문명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까지 무너뜨린 장면이다. 필로멜라는 피해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피해를 말할 수 없는 존재로 격하되었다. 이 혀 절단은 국가적 침략 이후 진실의 은폐, 기록의 왜곡, 역사에서의 삭제를 상징하며 따라서 침략보다 더 깊은 차원의 폭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침묵은 곧 무력함이 아니었고 그녀는 말할 수 없기에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붉은 실로 수놓아 전달하는 행위는 공식 문서화되지 않은 진실, 즉 기록되지 않은 내부 고발로서의 힘을 상징한다. 이는 곧 말할 수 없는 자들의 언어이며 고대 사회에서 여성이 쓸 수 있었던 유일한 표현의 방식으로서의 직조의 상징성을 강화한다.



이 직조는 단지 장식적 행위가 아니다. 더불어 직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말보다 깊이 각인되는 기억의 기술이다. 말은 흩어지지만 베 위에 새긴 실은 남는다. 그녀의 실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문명 내부에 균열을 일으킨다. 베 짜기는 여성에게 허락된 침묵의 테두리 안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침묵을 강요당한 여성은 침묵의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직조는 언어의 대체물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법이며 그 자체로 역사의 또 다른 기록 형식이다.



필로멜라는 침묵 속에서 메시지를 수놓았고 그 메시지는 단지 사적인 고통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 결국 필로멜라가 새긴 실은 사적인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정치적 증언이었고 그 증언은 말보다 더 정교하게 짜인 구조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실은 질서의 단위이고 직조는 구조의 축적이다. 필로멜라는 단지 고통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로 문장을 짜고 서사를 만들어내며 역사의 전환점을 준비했다. 이 직조된 기억은 한 사람의 복수를 넘어 국가의 균열과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은 역사를 바꾸었다.



이러한 점에서, 말할 수 없기에 그녀는 수놓는다. 이는 글쓰기 이전의 기록 방식이며 그녀의 침묵이 단순한 무력함이 아니라 강력한 저항임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러한 해석은 신화 속 혀를 잘린 피해자의 상징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침묵이 단지 침묵이 아닐 수 있음을, 언어를 잃었지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그리고 그 상징은 끝내 형상을 갖춘다. 결국, 등장인물들의 변신으로 이 서사의 구조를 완결 짓는다. 테레우스는 올빼미로 변해 밤에만 활동하고 결코 다시 왕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왕권과 권위의 상실, 그리고 암흑 속에서만 존재하는 괴물로의 전락이다. 프로크네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인 죄책감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나이팅게일이 되며 그녀의 노래는 단순한 새소리가 아니라 속죄의 울음, 반복되는 자책의 목소리다. 필로멜라는 제비로 변하지만 혀가 없기에 여전히 말하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그녀는 하늘을 날며 침묵의 힘을 증명한다. 돌아오되 말하지 않고 존재하지만 설명하지 않는 진실의 형상이다.



이 세 새의 상징성은 각각 통제력을 잃은 권력, 속죄에 빠진 문명, 억압된 목소리라는 세 개의 구조를 형성하며 이 신화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공동체와 권력, 기억과 기록, 침묵과 언어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시스템적으로 배제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몸짓, 직조, 예술, 상징 등을 통해 말을 걸었다. 이 신화는 그런 침묵의 전략들이 어떻게 정치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기도 하다.




4. 결론




테레우스와 프로크네의 이야기는 단순한 괴기 신화가 아니다. 이 신화는 정치적 동맹, 외교 조약, 권력과 욕망, 침묵과 진실이라는 주제를 품고 있다. 한 개인의 폭력과 욕망은 결국 그 개인을 넘어서 가문과 국가를 무너뜨리는 파국을 초래한다. 이 신화는 그 모든 과정을 상징적으로 구조화하여 신들의 부재와 복수의 여신 등장으로 시작해 인간 세계의 균열과 몰락으로 끝맺는다.



결국 테레우스의 범죄는 트라키아 전체에 저주를 남겼고 프로크네의 복수는 문명국가의 도덕성과 정체성마저 위협했다. 그리고 필로멜라의 수직적 침묵은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어떻게든 전파되고 기억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 신화는 인간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영향, 침묵이 어떻게 권력을 무너뜨리는지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낸 그리스 신화의 한 정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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