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 어려워하는 이유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삶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고전을 읽을 때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작가의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정리한 후 그 작품을 접하면 작가의 어휘 이면에 숨겨진 은유를 파악하기 쉬워 글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다가오는 깊이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탈로 칼비노의 11권 전집 서평에 들어가기 전에 그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그의 일생에 대하여 미리 꼼꼼하게 짚어보고 넘어가려고 한다. 사실, 서평을 쓸 때 매번 작가 소개를 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그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상황이니 따로 빼서 프롤로그로 만들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본명은 이탈로 조반니 칼비노 마멜리(Italo Giovanni Calvino Mameli)이다. 그의 이름은 이탈리아인임을 잊지 않기 위하여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탈로 칼비노는 1923년 10월 15일 쿠바 아바나의 산티아고 데 라스 베가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마리오는 농업과 화초 원예를 가르치던 농학자이자 생물학자였으며 1909년 멕시코로 이주하여 20년간 농업부에서 일했다. 이후 농학 연구소와 농업학교를 맡기 위하여 쿠바로 이주하였다. 그의 어머니 에바 마멜리는 생물학자이자 파비아 대학 교수였다. 이들 가족은 멕시코 혁명 이후 1917년 쿠바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두 살이 채 안 된 1925년 가족은 모두 이탈리아로 망명하게 되며 2년 후 그의 형제 플로리아노가 태어난다. 여담으로 잠시 말하자면 플로리아노는 나중에 저명한 지질학자가 된다. 사실 그들은 이전부터 이주를 계획했으나 칼비노의 탄생으로 이주가 연기되었다.
그러나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 대에 들어서면서 쿠바 경제의 효자 노릇을 하던 설탕 가격의 등락이 10배 이상 널을 뛴다. 이 사태로 인하여 무역 관련 업종에 있던 사람들은 큰돈을 벌게 되지만 쿠바의 금융은 파탄이 난다. 이에 1898년 미-서(미국-에스파냐)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1921년 쿠바 재정에 개입한다. 미국은 쿠바에 관광 산업을 발달시키기 위하여 시설 확충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상황의 상호작용으로 쿠바 농민의 20% 이상이 토지를 잃고 농장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이 개입하면서 쿠바의 정치적 상황 또한 어수선해진다. 1925년 5월 군부세력인 마차도 장군이 대통령에 오르고, 쿠바의 일인 독재정치가 막을 연다. 정치, 경제적으로 어수선하였기에 군부세력이 쿠바를 장악한 후 이탈리아로 건너온 듯하다.
칼비노의 집안은 대대로 과학자들이 많았고 특이하게 집안에서 과학자들만 존중을 받았다. 심지어 외가 쪽도 마찬가지였으며 들어온 배우자까지도. 그래서 이탈로 칼비노는 집안에서 유일한 문학가로 미운오리새끼였다고 그는 전한다. 성장할 때도 부모님의 가치관에 의해 집에서 종교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의외로 그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늦게 경험했는데 이를 느끼게 해 준 책이 키플링의 도서들이었다고 한다. 1941년 전쟁으로 인하여 그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도 치르지 않은 채 졸업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근무하는 토리노 대학교에 농학부에 입학하였다. 이후 1943년 피렌체 대학교로 편입하였고,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조지프 콘래드에 관한 논문으로 토리노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몇몇 작품을 필명으로 게재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영화로 인하여 농업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영화 평론을 작성하여 『조르날레 디 제노바』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1942년에는 그동안 직접 쓴 단편을 모아 『내가 미친 건지 다른 사람이 미친 건지'라는 제목으로 출판사에 투고를 하지만 출판되지는 못한다.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에 이탈리아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상태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한다. 이때의 경험을 녹여낸 그의 첫 장편 소설인 네오리얼리즘 소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이후 등장하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환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시각을 활용해서 현실과 거리 두기를 두는 방식으로 현실 고발을 하여 이후 그의 소설의 방향을 잡게 해 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레지스탕스 활동 이후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그러나 나중에 소련의 헝가리 침공 등 자신의 공산주의적 신념에 벗어난 일련의 사태를 목격하고 회의감을 느끼며 당을 탈퇴한다. 이렇게 공산당에 매력을 느껴 가입하거나 동조했다가 발을 뺀 예술인은 스페인 내전에서부터 꾸준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조지 오웰이 있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좌파 진영으로 러시아와 아사냐 대통령, 멕시코와 함께 국제여단으로 참여하였으나 러시아가 야욕에 멀어 행동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동물농장』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탈당했으나 이탈로 칼비노는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관심과 활동을 줄이지 않아 환상 소설 작가의 기본 타이틀인 실제 사회정치적 현실 외면 가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1952년에는 『반쪼가리 자작』과 1956년 『이탈리아 동화집』을 발간하였다. 이후 네오리얼리즘적인 성향을 벗어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환상 소설을 발표한다. 칼비노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상징적이고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독창적인 서사 기법과 상상력을 통해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 특히 "메타픽션"과 "탈근대적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작품 간의 관계를 재구성한 점이 주목받았다. 환상 소설을 비롯하여 소설이란 장르의 여러 실험적인 요소들을 작품으로 담았던 이탈로 칼비노는 하버드 문학 강연 초청을 받아 강연을 준비하다가 1985년 9월 19일 뇌일혈로 쓰러졌고 치료를 받다가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사망한다.
네오리얼리즘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포착하고자 하는 영화 운동으로 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 인민 대중의 삶의 현장을 묘사하는 주의이다. 이는 무솔리니 정권에서 장려한 국책용 선전물과 영화가 현실도치적이라는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탈리아 민중의 비참한 현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겠다는 정신이 시발점이다. 그래서 기존 예술의 전통적 내러티브 스타일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네오리얼리즘'이란 용어는 1942년 강박관념(Obsession)〉(1942)의 시나리오 작가 안토니오 피에트란젤리(Antonio Pietrangeli)가 처음 사용했다.
이에 반해 환상 문학은 네오리얼리즘의 정반대에 대치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는 것보다는 가상적이고 비사실적인 요소를 가미한 상상력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구조주의자 토도로프에 의해 개념화되었다. 광의의 의미로는 초자연적인 내용을 초자연적으로 설명한 경이 문학, 초자연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설명한 미스터리 문학, 초자연적인 것을 쓰고 답은 독자에게 미루는 환상 문학이 있다. 18-19세기 리얼리즘, 1920년 대 모더니즘 이후 리얼리즘과 구별되는 문학으로 정립되었다. 이는 고전 문학에서 부분적으로 존재했던 초자연의 새로운 부활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카프카의 변신, 미리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브램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비롯하여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들 등이 있다.
이탈로 칼비노의 다양한 문학적 실험과 주제의식을 보여주며, 현대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Il sentiero dei nidi di ragno, 1947), 반쪼가리 자작 (Il visconte dimezzato, 1952), 나무 위의 남작 (Il barone rampante, 1957), 존재하지 않는 기사 (Il cavaliere inesistente, 1959),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 (Marcovaldo ovvero Le stagioni in città, 1963), 모든 우주 만화 (Le cosmicomiche, 1965), 교차된 운명의 성 (Il castello dei destini incrociati, 1973), 힘겨운 사랑 (Gli amori difficili, 1970, 본격적으로 1971), 보이지 않는 도시들 (Le città invisibili, 1972),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Se una notte d'inverno un viaggiatore, 1979), 팔로마르 (Palomar, 1983)가 있다.
*** 시대적 배경까지 논하고 싶었으나 각 작품마다 다루는 시대적 배경이 조금씩 달라 이 부분은 작품을 설명할 때 개별적으로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