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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10. 2022

호주 공무원 18년 차

호주에 떨어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남편과 두 살 터울 애 둘을 키우며

가장 기억나는 건 냉장고에 기대어, 반수면 상태로 쪼꼬렛을 입에 물고 "자면 안돼 자면 안돼..." 스스로 최면을 걸다 선 채로 수면으로 들어갔던 일이다.

행복했지만 늘 피곤했다. 

한 살, 세 살 꼬물이들을 키울 때, 남편이 내게 생일 선물로 뭘 원하는지 호기롭게 물었다.

"셋이 아침에 나가서 하루 종일 놀다 와 (셋이 잠시만 내 인생에서 꺼져줘)" 예쁘게 말했다.

착한 남편은 그대로 했다. 세 시쯤 전화가 왔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우리 이제 들어가도 돼?"

두 끼를 못 채우고 들어온 나의 웬사랑들 (웬수지만 사랑은 한다).


둘째가 풀타임 학교(Kindergarten: 캔버라 학제, 학교에서 시작하는 유치원 과정)를 시작하자, 나는 거의 해방의 기쁨을 느꼈다. 호주 와서 10년 만이다.

그 자유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세상에나... 나만의 여섯 시간을 갖게 되다니!"


그 자유의 시간에 뭐 할까 고민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공부를 시작했다.

박사를 마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캔버라는 행정도시라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거나 정부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남을 수도 있었으나, 계약직이 대부분이었고, 더 이상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남아 일하면서, 식구들을 나 몰라라 하기도 너무 미안했다. 


사회심리학을 공부한 나는 정책부처에서 가족복지, 모자건강 정책을 연구로 지원하는 연구기획실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말은 자면서도 듣지만, 영어는 늘 신경 쓰고 있어야 들린다. 피곤하면 영어도 안된다. 이럴 때, 더 호주 방송을 듣거나 하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하루 종일 햄버거 먹으면 김치 찾듯이 집에 오면 한국 드라마, 한국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영어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는 것도 속상하지만, 더 속상한 건 한국말도 잊어버려, 간단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날 때이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영어는 빨리 늘지 않는 반면, 모국어는 어휘량이 줄거나 아예 표현력 자체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가끔, 애 엄마가 늦깎이로 공부하고 공무원 한다고 하면 영어를 잘하나 보다고 칭찬 반, 부러움 반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쎄, 영어를 잘하진 못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민망할 때가 있다. 

또는 자녀교육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민 온 사람들 한테는, 자기 자녀가 영어를 잘해서 좋은 데 취직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럼, 난 속으로 생각할 밖에. '그럼, 영어 원어민인 호주 사람들은 다 취직하게?', '한국말 잘하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에서 다 취직하나 그럼?' 한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 언어로 의사소통이 된다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다. 


어디나 똑같다. 자기 전문분야가 있어야 어디서도 당당할 수 있다. 목수면, 목수로서의 전문성을 갖추면 된다. 연구자이면, 연구자의 실력으로 보이면 된다. 연구자가 필요한데, 영어만 잘하는, 연구실적이 형편없는 사람을 뽑을 리 만무이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잘하는 사람을 뽑으면 좋겠지만, 의사소통과 별개로 그 사람이 하는 일에 얼마만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호주 일터에 인종차별이 없다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영어가 완벽하지 못하면 낮추어 보는 일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문성을 꾸준히 보이는 한 편, 존중하는 태도로 솔직하게 의사소통하면 그럭저럭 평범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어가 제2외국어인지라, 둘러말하거나 외교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영어의 한계가 사뭇 크다. 우리 딸이 '엄마가 영어 할 때는 굉장히 단호하게 들려'라고 할 정도다. 그래서 최대한 친절한 표정으로 설명해주고, 그들의 이해도를 확인한다. 다른 부처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이 협력해서 짧은 시간에 프로젝트를 완수해 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언어표현력이 원어민에 미치지 못하는 매니저랑 일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호존중과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만 있다면, 외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고 보면 된다. 이상은 밥 먹고 살 정도로만 적당히 일하는 사람의 주관적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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