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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10. 2022

으쓱으쓱, 굽실굽실

사람들이 대화하는 자세를 보면 그들의 상대적 지위를 알 수 있다. 

특히 상하관계가 뚜렷한 한국문화에서 더 그런 것 같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큰 몸짓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과, 

어깨를 둥글게 말고 다소곳이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전자가 후자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담임교사와 학부형, 고용주와 고용인, 백화점 직원과 고객, 부탁 들어주는 사람과 부탁하러 온 사람, 남자와 여자 혹은 여자와 남자 등등, 우리는 여러 곳에서 몸짓만으로도 사람들의 관계를 파악하고는 한다. 인간관계로 나타나는 지위의 등고선에 약간의 트위스트가 가미될 때도 있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이라 할지라도, 그 부하직원이 회장님의 따님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직장상사는 젊고 순진해 보이는 부하직원이 만만해 보였지만, 그녀가 회장님의 딸이란 걸 알았을 때, 각 관절이 유연 해지며, 진흙 속의 미소를 띤다. 


몇 년 전에 한국 교민의 지역사회 모임에 갔을 때였다.  ‘참석해 주신 내빈’을 소개하는 순서는 종당에는 민망할 지경까지 되었다. 대사님, 영사님, 회장님, 위원장님, 소장님, 사장님, 원장님, 이사님, 국장님 등등 '고위직 님'들이 너무 많아, 그저 그 모임의 들러리를 설 운명으로 초대된 참석자의 숫자를 웃돌 지경이었다. 진정 지.못.미.


좁은 한인 지역사회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감투가 있었는지를 이민 생활 사반세기 만에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 만의 리그에 존재하는 서열의 적나라한 바디 랭귀지는 그저 밥이나 한 끼 얻어먹으러 갔던 아줌마님으로서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굽실굽실 다소곳한 어깨가 으쓱으쓱 한껏 부풀어 도드라진 가슴들에게 말을 걸고, 저벅저벅 걸음을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며 저녁을 보내는 이들을 구경했다.


지위는 명예일 수도 있고, 돈이나 권력일 수 있으며, 그 모두일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이런 관계에 등고선을 그리는 것은 '지위 불안'이다. 지위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계산하고 올라가려 노력하거나, 최소한 뒤로는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행동의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이다.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은 우월감을 유지하려 필사적으로 애쓰게 할 것이고,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열등감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게 만드는, 결국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우월하든 열등하든 절대 편할 수 없는 그 무엇, 바로 불안이다.


그 모임에 있던 십 수명에 달하는 '님' 중 한 '님'이 아는 척을 했다. 으쓱도 안 하고 굽실도 안 하려고 마음먹었건만 실없이 웃으며 얘기를 들어주고 말았다. 아이 참, 많이 웃으면 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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