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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06. 2022

없어 보아야 안다, 있음의 흥분

무슨 개똥철학인지, 난 장난감 없이 아이들을 키우기로 했다. 어릴 때 삼 형제가 첨단 장난감에 둘러싸여 살던 남편에게는 정말 청천벽력과 같은 육아정책이 아닐 수 없다. 공동육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남편을 설득하는 건 필수였다. 감언과 이설이 동원되고, 내가 오래전 아동심리학을 공부했다는데 전문가 보너스가 주어져 우리 아이들은 장난감 빈곤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물에 콩 나듯 사주기 (생일 때도 장난감은 건너뛰기 일쑤), 유행 지난 장난감 사주기, 책 많이 사주기 (아이들이 관심도 없는 책을 집에 들여, 심심해 죽겠을 때를 대비한 비상 잡화 만들기 등). 그중 백미는 아이들 어렸을 때 TV를 없애버린 일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디지털 기기에서 TV 스트리밍이 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TV는 아이들의 생활의 중심이었다. 막내는 거의 금단 현상이 일어날 뻔했으나 무사히 넘겼다. 남편은 무척 괴로워했다, 아니 장난감도 안 사주고 TV도 못 보게 하면 애들은 뭐하고 노나?


심심해 죽겠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아이들이 집에 돌아다니는 책들을 잡아 펴보는 일도 늘었지만, 그 뿐 만이 아니다. 땅이 거의 300평 가까운 허름한 집에 살던 우리는 감히 정원 정리는 꿈도 못 꿨다. 땅도 너무 크고, 남편도 나도 너무 바빠서 한 2주에 한 번 잔디 깎는 것으로 우리의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옆 마당에 나갔더니 땅에 구멍이 퍽퍽 파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캥거루가 그랬나? 토끼 굴인가?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여기저기 있으니 궁금증은 더해져 갔다. 범인은 곧 드러났다. 아이들이 골프를 치겠다고 땅을 파놓은 것이었다. 여섯 살, 여덟 살 여자 아이들이 그 척박한 땅에 그렇게 많은 구멍을 팠다니 놀라울 뿐이다. 부모의 무관심과 아이의 엉뚱한 추진력이 부른 재앙이다. 그 다음 놀이는 당연, 땅 메우기. 또 그렇게 며칠을 떼웠다.  


아이들의 놀이시간 및 장난감 자급자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원에 있는 나뭇가지를 잘라 뾰족하게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선물까지 했다. '이게 뭐야?' 물어보니 가짜 연필이라 한다. 어느 날은 오더니 가방을 떡 열고 벽돌 반토막을 꺼낸다. 놀라서 '이게 뭐야?' 물었더니 가짜 연필을 선물했더니 친구가 그 벽돌을 ‘골라’ 주었단다. ‘잘생겼지?’ 벽돌을 고급진 도자기 보듯 지긋이 쳐다본다. 그저 이상한 애가 우리 애 만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 이상한 애들이 일을 벌여 급기야는 학교에 불려 갔다. 고무장갑 바가지 같은 게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해서, 또 뒷마당에 공사 시작했나 했는데, 그게 우리 집 뒷마당이 아니고 학교였던 것이다. 일군의 아이들과 학교 비탈에 일 미터 깊이의 땅을 파고 물을 부어 댐을 만들고 은폐해 놓은 것이 선생님한테 걸린 것이다. 좀 우습기도 하고, 이 아이들을 다 움직여서 댐 공사를 완성한 리더쉽을 보인 우리 딸은 과연 누굴 닮은 것인가 궁금했다.


어느 여름 방과 후,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

둘째: 엄마, 아빠 선물 찾았어.

나를 학교 담장 옆으로 끌고 가더니, 커다란 나무 아래 부러진 검트리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나: 이게 뭐야?

둘째: (그 부러진 가지 끝에 희끄무레한 열매를 가리키더니) 여기 열매 이쁘지? 아빠 주면 좋아하겠지?

나: 그래. 너무 크니까 위에 열매만 잘라 가자. 

둘째: 아냐 다 있어야 멋있어.

폼생폼사인 둘째는 족히 삼 미터는 되는 가지를 다 가져가야 한단다. 어린아이들의 집중력 스팬이 짧은 것과 작은 자극은 큰 자극으로 잠재울 수 있다는 심리학적 지식을 장착한 나는 고집 센 둘째를 회유했다.

나: 그래. 그러자. 그럼 아빠 보러 클로비스 아저씨한테 트레일러 빌려서 이 가지 실어오라 하고, 우린 햄버거 먹으러 갈까?

둘째는 나뭇가지도 가져가고 햄버거도 먹게 되어서 신났는데, 나름 신중하고 눈치 없는 큰 딸이, 

큰 딸: 엄마 저 밑에 두꺼운 쪽만 톱으로 자르면 트렁크에 실을 수 있을 거 같아.

라고 몹쓸 제안을 하는 거다. 둘째의 눈이 반짝거리기 전에 ‘햄버거 집 문 닫는다’ 일갈하고 아이들을 후딱 차에 태워 학교를 떠났다. 


난 둘째가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할 줄 알았다. 공무원이 될 줄은 몰랐다. 혹시 실업자 신세가 되면 공무원이 될 것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했다. 엄마 아빠도 공무원이고 언니도 공무원이니 아마 그 직업은 흔하려니 한 것 같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둘째의 마지막 선택도 아니었거니와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좋아하기도 한다. 그래도 왠지 그 세계가 둘째의 종착역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 아이에겐 인생 2막이나 3막이 있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결핍을 소개하며 나는 어떤 기대를 가졌던 건 아닐까 곰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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