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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06. 2022

가성비 갑 자녀양육

게으른 부모를 위한

한 때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였다. 드라마 따라가기가 숨이 찰 정도였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챙겨 보았다. 서울대 의대를 향한 부모와 자녀들의 무한질주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입시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게 맞다. 별로 욕망에 충실하지 않은 건어물 타입이라 이해 안 되는 구석이 더 많다만, 한국의 학부모들은 ‘너무’ 이해가 된다고 하니 한국사회를 그저 희화화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호주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다. 보편적인 호주 엄마들처럼 대충 길렀다 (호주 엄마들을 과소평가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관심, 교육투자에 비하면 정말 대충 수준이다). 게다가 둘째가 학령기가 되었을 때는 내가 공부를 시작해서 애들 교육이고 뭐고 내 코가 석자였다. 부모의 관심과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나 과외도 한 적이 없으니 아이들 거저 키웠다는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사실 아이들은 스포츠나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보는 것마다 하고 싶어 했는데, 그걸 자르고 정리해서 좋아하는 한 두 개만 하게 했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거의 매일 저녁 택시 운전사처럼 아이들을 나르는 남편에게 쉬는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하고 자신들이 공부한 방향으로 직업을 잡았다. 다른 건 몰라도 가성비는 최고인 애들인 건 맞다.


제 밥벌이 하니 잘 키웠다 할 수 있지만, 정말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느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우리 가족은 컴패션에서 주관하는 제3세계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을 꽤 오래 하고 있다. 일반 가정치고는 작지 않은 수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누군가 후원하다 사정상 못한다는 말을 들어서, 우리가 거둔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어느 날 한 두 명 더 후원해도 될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가족회의를 열었다. 큰 애는 우리의 의견에 크게 찬성하며 오랫동안 대기자 명단에 있는 아이들을 더 지원하자고 했다. 그러나 둘째는 반대였다. 후원하는 아이들의 수를 늘리기 전에 그 아이들에 대해 개인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애들이 보내는 편지에 답장도 해주고 최소한 그 아이들의 이름이라도 외워야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 애들과는 개인적 관계를 맺었으니 관계에서 기대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게 둘째의 주장이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동냥이 아니라 자립과 발달을 돕는 물질적 지원이라는 것이다. 뜨끔했다. 그들에게 보내는 돈은 자동이체되는 터라 크게 관심 가져 본 적이 없다. 답장은 정말 가물에 콩나 듯하고, 어떤 아이는 10년 이상 후원하고 있는데 사진이 오면 많이 컸네 할 뿐 이름도 잘 모른다. 


반면 첫째의 의견은 달랐다. 우선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후원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오히려 아동복지기구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후원한 돈이 아이들의 복지를 위해 잘 쓰이고 있는지 감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실질적 도움은 현지 스태프의 일이고, 그 일을 잘하도록 지원하고 모니터링하는 게 시민사회의 더 큰 책임이라 했다. 이름도 모르지만 모니터링을 해본 적도 없는 나는 다시 한번 뜨끔했다. 아이들의 논쟁은 뜨거워졌고 각자의 방으로 문을 꽝닫고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두 녀석의 말이 다 일리가 있고 에미 맘 후벼 파서 반성하게 하는 시간들이었지만, 공공 마인드와 사려 깊은 생각을 가진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줘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그러나 삶은 드라마는 아닌 듯싶다. 커다란 개선이 없었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의 이름도 잘 모르고 시민사회의 감시 책임도 살펴 볼 시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하루하루 허겁지겁 살고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여전히 제 생각과 다르면 문 꽝 닫고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평화로워야 할 논의를 썰렁하게 끝내 버린다. 이래서 사람 고쳐 쓰기 힘들다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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