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과거의 추억을 퇴행적이지 않게 즐기는 방법
소중한 과거의 추억을 퇴행적이지 않게 즐기는 방법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마침 대학 졸업 30주년이라 특별 동창회가 있다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본다니 설렜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이야 성공한 친구들도 있고 그럭저럭 사는 친구들도 있어서 약간의 긴장감도 있겠지만, 아예 나라밖에 살아 열외가 된 나로서는 그저 30년 만에 동기들을 만난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뻥튀기가 된 나와 달리 친구들은 학교 때 모습 그대로 나이 들고 있었다.
예전에 엄마의 동창회를 따라간 적이 있다. 그때는 엄마와 친구들이 사범학교를 졸업한 지 50년이 넘은 시점이었는데, 총동창회라 그런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적지 않아 인사를 나누느라 부산했다. ‘어머 얘! 너 어쩌면 학교 때랑 하나도 안 변했니!” “너 똑같다 얘.” 서로 똑같다고 인사하는 엄마와 엄마 친구들을 보며 ‘이 분들은 꽃다운 여고시절에 이런 얼굴이었단 말인가?’ 슬며시 웃음이 났다. 내겐 그냥 보통 할머니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도 내 친구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어머 얘 너 어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니?” 똑같은 소리를 하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감탄을 해댔다. 역시 사람은 그 나이 되어봐야 아는 게 있다.
반면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은 제자들보다 격한 세월의 세례를 받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학원생이 몇 명 되지 않아서인지 우리는 선생님들과 친했다.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교수 식당에 데리고 가서 밥도 자주 사주셨다. 대학원 때, 일 년 반 정도 조교를 했는데, 선생님이 밥 먹으러 가자 하시면 어려워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따라나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선생님들이 지금의 우리 나이 비슷하셨겠구나 싶다. 나를 잘 기억하셔서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주시는 선생님도 계셨지만 얼굴을 보고도 가물가물한지 그저 반가워만 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그 자리에는 60년대 학번인 선배들도 참석했다. 대학 때처럼 선생님! 하며 살가워해서, 더 가까운 시기의 제자였을 우리보다 더 진한 사제지간의 정이 보였다. 오십이 넘은 우리는 그곳에서 거의 막내 학번이었다. 어디 가도 젊다 할 만한 곳이 없는데, 84학번이 왔다고 이제는 생경해진 막내 취급을 톡톡히 받았다. 사교성 좋은 친구들은 테이블을 돌며 막내가 해야 할 일을 싹싹하게 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대학시절로 돌아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대기의 균형을 깨는 재미있는 상황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학교 후문에 있는 한 식당에서 나이 든 선배들이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이 들어갔는지, 심리학과에 재직 중인 후배 교수가 인사차 모임장소에 들렸다. 방 한가득 나이 든 사람들한테 잔뜩 주눅이 든 채 걸어들어오는 현직 교수는 학생처럼 어려 보였다, 젊어 보였다가 더 맞는 말이겠지만. 심리학과에 지속적인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는 둥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고, 은퇴하신 노교수님들께도 정중하게 인사하고 서둘러 떠났다. 그럼 이만 총총 휙.
갑자기 즐거운 놀이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옛날 놀이를 하고 있는데 예고 없이 현재가 들이닥친 민망함 같은 거. 80대 선생님과 60대, 50대 제자들이 대학 때로 돌아가 그때의 몸짓과 말투를 꺼내며 각자의 60년대를, 70년대를, 80년대를 즐기고 있는데, 미래의 메신저가 뻐꾸기시계처럼 얼굴을 내밀고 ‘지금은 2018년입니다’ 외치더니 휘리릭 탁 새장 문을 닫아버린 거다.
나는 내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사는 편이다. 늙던 젊던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젊으면 젊어서 좋게 있고, 늙으면 늙은 대로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듦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산다고 느꼈는데, 이처럼 현실에 따뀌맞은 느낌은 처음이다. 과거는 어떻게 방문해야 옳은가? 과연 소중한 과거의 추억을 퇴행적이지 않게 즐길 수 있을까? 다만 박제된 시간을 보듬고 화들짝 놀라지 않으려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야 된다는 생각은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