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햇살 가득 오솔길을 눈부시게 걷다가도
느닷없는 소나기를 만나 허둥대며 달려가는 나날들의 연속.
좋은 사람 만나 즐거움 뿜뿜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하지만,
싫은 사람을 만나면 시간은 어찌 그리 더디 가는지.
고무줄 시간과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같은 인생의 길 위에서
거의 4 반세기를 내가 가는 곳마다 편안해 보이는 벤취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만나지는 친구가 있다.
레티치아를 처음 만난 건 남편의 직장 때문에 우리가 스코틀랜드에 1년을 살게 되었을 때이다.
30대 초반, 인생의 아름다운 건 다 가진 때였다, 가벼움, 호기심, 유머, 젊음, 그런 거.
낯선 나라에 왔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적응해버린 심리적 탄력성까지.
레티지아는 다니엘과 앤드류라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우리 딸들과 나이가 같아,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나도 차가 없고 레티치아도 차가 없어, 방과 후면, 수선화가 가득한 길을 아이들 넷을 손잡고 걷다 보니 친해졌고, 이틀을 멀다 하고 애들을 도서실에 풀어놓고 커피 마시며 수다도 떨고, 우리가 읽을 책들을 고르고 서로 권하며 더 친해졌다.
레티치아와 남편의 스토리는 무슨 영화인 줄. 플로렌스에서 가톨릭 사제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던 데이비드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던 여대생 레티치아는 공부 외의 것을 하다, '신부 그까이꺼' 때려치우고 (전적으로 내 생각) 데이비드의 고향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서 살림을 차렸다. 이탈리안 아가씨 레티지아는 전문대학에서 이탈리어를 가르치고 데이비드는 고등학교에서 사회, 윤리 등을 가르치며 엄마와 아빠 하나씩 닮은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일 년을 거의 매일 만나다가 우리 가족은 호주로 돌아오고 레티치아는 스코틀랜드에 남았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으로 서로를 잊지 않았고, 그렇게 만나지 못한 채 20년이 흘렀다. 그 새 레티지아는 이혼을 하고, 아들 녀석들이 속을 썩여 좀 맘고생을 하고, 새 남자 친구가 생겼다. 레티치아는 이런 소식들을 뉴스 전하듯, 그리운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전해주었다.
2019년, 오랜만에 친한 부부와 유럽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프랑크푸르트에 3일 묵을 거란 소식을 들은 레티치아는 남자 친구를 데리고 프랑크푸르트로 날아왔다. 딱 20년 만의 만남이었다. 레티치아의 남자 친구 니키타는 차를 빌려서 독일 남부와 프랑스 북부를 구경시켜주었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걸으며 레티치아에게 물었다.
"요즘 카페는 어때?"
레티치아는 남자 친구와 시립 도서실 건물 안에 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응, 하루에 열 잔 정도 팔아. 그래도, 너도 알잖아, 내가 책 좋아하는 거. 신간을 제일 먼저 읽을 수 있어."
열 잔이라는 말에 놀라는 내 얼굴을 보고, 레티치아는 이렇게 말했다. 열 잔이라니... 그걸로 둘이 먹고살 수 있다는 건지. 레티치아는 아직도 전문대학에서 언어를 가르치고, 니키타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지만, 얘가 정말 그 카페를 해서 먹고살 만한 건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돈도 없는 애가 프랑크푸르트는 또 무슨 돈으로 왔는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안 받겠다는 레티치아에게 비행기 값, 차 렌트 값, 숙박비를 대충 계산해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 한 번 보고 가서 재정에 큰 구멍이 날 친구의 삶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헤어지는 날, 우리는 한참을 껴안고 서있었다. 어떻게 20년을 안 만나고도 우리는 우정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같은 캔버라 안에서도 만나다가 흐지부지되어 안 만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20년을 못 만났어도 우리는 어제 만난 친구처럼 할 얘기가 많아 리틀 프랑스나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얘기만 하며 걸었다. 모르겠다, 이 우정의 비밀을. 아마 이런 건 아닐까. 10여 년 전 책을 냈을 때, 난 한글을 읽지도 못하는 레티치아에게 그 책을 제일 먼저 보냈다. 한국 친구들에게도 거의 주지 않은 책이다. 난 왜 그 책이 나오자마자 레티치아에게 보냈을까? 읽지도 못하는 그 책을 뿌듯해하며, 마치 자신의 성취인 양 기뻐해 주던 레티치아의 반응을 미리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2021년, 레티지아와 플로렌스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코비드 때문에 모든 여행은 취소되었다. 우리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다음에 만나면 되지. 20년도 기다려 만났는데, 한 몇 년 미뤄지는 건 대수롭지 않다. 우리가 만나는 전자우편의 공간에서도 메시지 어플리케이션에서도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우리의 우정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도 레티치아는 내 삶에 살금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