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부 습작기행

by 서지석

제목: 서문



가난하게 살아도

버릇없이 꿈을 꿉니다


사람을 싫어하던 제가

사랑을 기다립니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꽃이 필 것 같습니다

드디어 꽃이 필 것 같습니다


여기 작게 세상을 만듭니다

꿈꾸는 이들이 모두 해맑게 뛰노는 세상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가난한 제가 겁 없이 버릇없이

그 세상 사 가지고 여기로

오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제목: 가만히 누워서



세상이, 삶이

이 좁은 방안이

이렇게 평화롭고 고요하여도

스스로 침을 뱉어

불안을 키워낸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장기다.


고통 없이 자란 불안은

목적이 없다.

허공을 겉돌다 심장을 파고든다.

속 안에 작은 구멍이 느껴진다.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도


아프진 않다. 조금 허 할 뿐.

아프진 않다. 정말 아프진 않다.


한숨 닮은 하품, 한 번

아니 두 번,

이제 잠에 들어야 한다.

다시 내일을 맞으러 가야 한다.


나는 오늘도 방문 한 번 열지 않았다.


제목: 자화상



쓰레기 더미 속

무명 화가의 그림


안갯속 초록빛을 뽐내며

한 남자가 서 있다.


가느다란 눈. 비뚤어진 코. 마른 입술.

악취가 난다. 시체를 그렸나.


그림 속 남자 터벅터벅 걸어온다.

입술이 멋대로 움직인다.


가느다란 눈. 비뚤어진 코. 마른 입술.

악취가 난다. 시체를 그렸나.


제목: 승차거부



부끄러움 이기고

손 흔들어 세운

택시 한 대


아저씨, 집으로 가주세요.


돌아오는 손님 없다고

휙 지나가버리는,,,


집은 너무 멀어 할 수 없이

돌 하나 집어 들고

불 꺼진 꽃집 향해


사이렌 소리

발자국 소리

한수움 소리


죄송해요, 집에 가고 싶어서 그랬어요.


제목: 광(光)



텅 빈 광장에 쏟아지던 빛

한 순간 단 하나의 그림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눈앞에 없던 네가, 아지랑이 아지랑이

닿는 거라곤 안쪽 손바닥뿐이었고

울면 안 되는데 그럼 저기 있는

어린 얘들이 분명 놀리러 올 텐데

울면 안 되는데 그러면 여기 있는

마지막 그림자도 사라질 것 같은데


제목: 피에스타



사라진 이름이 있어


처음 그 이름을 지은이는

펑 펑 울었대


보고 싶어서 너무 보고 싶어서


해변에 떠밀려 온 건 전부 신기루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전부 사라져 버리거든


줬다 뺐는 건 정말 치사한 건데


쟤는 참 맑게 웃고 있어서

침을 뱉을 수가 없었지


껌뻑이던 가로등, 너는 돌을 던졌고

불쌍하다 말했지만 그게 참 멋져 보였어

너를 따라 나도 돌을 던져 봤지만

나는 별로 멋이 없었어.


어지러운 건 내가 아니야 세상이야 봐 봐

얽히고설켜서 윙 윙 왕 왕 월 월 으르렁 으르렁


사라진 이름이 있어


피에스타. 그녀의 피로 물든 해변의 축제

질식하고 싶은 날이야.


제목: 모스부호



숨기고 싶던 마음

동시에

들키고 싶던 마음


쓰고 있던 것은

불순한 의도뿐이었는데


계속 쓰고 싶어요


계속 숨기고 싶어요


계속 들키고 싶어요


그래 네 말이 맞았어

쓰는 건 병이었어

정신이 썩어가

그래도


... ---...


말리지 말아 주세요


... ---...


다가오면, 죽여버릴 수도 있어요


펜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세상은 거대해서

나를 지키기엔

나는 너무 작고 연약해

어디선가 네가 나를 읽는다면

네가 여기서 나를 읽는다면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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