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석 Nov 04. 2024

한 달 전 나에게 쓰는 편지

펜을 잡고만 있어

To. 나에게


 

  이건 여전히 어색하네.. 익숙해지지 않을 어색함이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어색한데,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너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니지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모든 게 부서지는 가을이야, 어제만 해도 웬일인지 세상이 여름을 가져왔었는데 뭐든 달콤한 순간은 한순간이잖아. 자고 일어나니 찬기가 온 방을 둘러싸고 있었어. 해가 지고 하늘이 그림자로 덮이니 지금은 무슨 한 겨울 같아, 차려입은 내 폴로 니트가 불쌍해 올해 몇 번을 입지 못하고 다시 어두운 옷장으로 갇혀야 한다니.. 전부 불쌍해 보이는 건 사람이든 사물이든 뭐든 다 나를 닮은 것 같아. 그래, 여전히 나는 역겨움 숨을 뱉고 있어.




  그때랑 지금이랑 크게 달리진 건 없어. 아니 어쩌면 모든 게 변했을 수도.. 너도 알잖아 우린 언제나 뱉고 짖는 글에 자신이 없었지. 그런데 취향이 독특한 사람들이 많은가 봐.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어. 신기하지? 남이 내 글을 좋아해 준다는 게.. 1년 전까지만 해도 딱 한 사람만, 정말 딱 한 사람만 내 글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벌써 이룬 거야! 그래도 여전히 어머니는 내가 펜을 놓으시길 원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잖아 아들이 살아있는 시체와 다를 게 없는데 어떻게 그걸 응원하고 바라보기만 할 수 있겠어.




  최근에 글이 써지지 않아.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 분명 알게 된 것 같았는데.. 주기적으로 감각은 리셋이 되나 봐. 펜을 처음 잡은 날로 돌아간 것 같아. 그래도 예전이었다면 분명 몸에 줄 하나를 긋고 싶어 안달이 났겠지만 나도 이제 조금 컸나 봐 줄을 그어도 종이 위로 긋고 있으니까 말이야.




  이런 글은 잘 쓰고 싶지 않아. 깊이 생각하며 쓰고 싶지 않아. 그냥 그냥 손이 가는 방향에 따라 쓰고 싶어 솔직하게 더 솔직하게 쓰고 싶어. 그래서 아직 이른 시간에 술을 먹었어. 싸구려 양주가 내 간과 머리로 5샷을 때렸지. 그러니까, 지금 나는 반쯤 제정신이 아닌 거야.. 이렇게 하루종일 쓸 수 있어 다음 날 아침까지 아니 저녁까지도 쓸 수 있어.. 그런데 여기서 그만 점을 찍어야 돼. 아니면 정말로 툭 툭 우웨에에엑 하고 숨겨 놓은 비밀들을 전부 털어놓을 것 같아 그러니까 어서 빨리 점을 찍어야겠어.




  이건 시지프스의 형벌이야.. 편지는 답장을 받으면 답장하는 게 예의잖아.. 그러니까 또 답장을 써야 해.. 후.. 다음은 3개월로 가자.. 3개월 뒤 나야.. 파이팅!






  한달 후 나에게 쓰는 편지 : https://brunch.co.kr/@paperprinciple/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