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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un 21. 2024

다정한 것은 늘 옳다.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x '엑스트라'

결심했다. 앞으로 나의 육아는 이 책을 본받겠다고. 이제껏 본 육아서 중에 크게 감명받은 책 중 하나로 등극했다. 첫 번째로 감명받고 인상 깊었던 것은 10여 년 전에 읽은 ‘프랑스 아이처럼’이다. 당시 크게 유행하며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지만 출산을 앞두고 읽게 되었다. 아주 참신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고 대우하면 그렇게 큰다는 것이 내가 이해하고 기억하는 큰 줄기다. 독립적인 면이 강한 나와 잘 맞아떨어져서 마음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작은 아이를 보며 이 아이는 나와 독립적인 인격체라고 되뇌었다. 정해진 큰 틀 안에서는 최대한 자율성을 주려고 했고, 선택할 기회를 많이 주었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가르치려고 했다. 그런 육아의 영향인지, 타고난 기질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꽤 독립적으로 자라고 있다. 언제까지 엄마가 필요한 건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당장 따로 나가 살아도 잘 살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이제 막 10대가 된 아이와 사춘기를 앞둔 아이를 둔 엄마 모두에게 새로운 단계의 육아법과 육아 신념이 필요한 시기였다. 필요에 딱 맞아떨어지는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앞으로 10년의 육아컨셉은 '다정한 관찰자'로 하고 싶다. 좋은 타이밍에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서 기쁘고 신나고 설렜다.

'관찰자'가 되고 싶다.

아이에게 큰 욕심이 없다며 고학년에도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는 엄마가 있었다. 주변의 굉장한 학구열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을까 생각했다. 공부를 시키고 안 시키고의 문제가 아니고 대다수의 선택에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바를 뚝심 있게 지키고 있다는 것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더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그녀의 생각을 엿보았을 때, 공부욕심이 없는 것이지 아이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아이에게 욕망이 없기란 쉽지 않다. 남들 앞에서 그 욕망을 얼마나 어디까지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욕망이 과할 때가 문제가 되는데, 과함의 기준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라고 느껴지니 다들 욕망을 축소해 보이는 것 같다. 책에서 작가인 이은경 선생님은 아주 솔직하다. 아이들을 향한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용감한 모습에 놀라며 감탄하다가도 겹쳐 보이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닌 척 부정했지만, 실은 마음 깊은 곳에 엄청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욕망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이 인상 깊었다. 과연 선배엄마구나 싶었다.

느린 학습자인 둘째가 걱정되어 소풍이나 현장학습에 몰래 따라가지만 개입할 수 없어 눈물로 지켜만 봐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뿐이겠는가. 앞으로 쭉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려는 부단한 엄마의 노력에 눈물이 쏟아져 휴지를 옆에 가져다 놔야 했다. 엄마의 무너지는 마음을 딛고 아이는 굳게 자랄 것이다. 화가 나지만 감정을 쏟지 않으려고 인내하는 모습이 멋졌다. 결국 공부든, 태도든 아이 본인이 경험하는 것이다. 아이의 실패가 마치 내 것인 것처럼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옳은 엄마의 태도가 아니다. 실패가 망한 결과가 아니고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멋진  엄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꽉 붙드는 것이 어디까지 클지 모르는 아이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일일 지 어찌 알겠는가. 애호박에 비닐을 씌우듯 아이를 옭아매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자라겠지만 마트에 같은 모양의 애호박들과 같이 주르륵 진열될 뿐이다. 아이를 믿고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자신을 믿어주는 엄마에게서 아이는 믿음을 배운다. 엄마를 굳건하게 믿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서로가 관찰자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육아는 역시 아이뿐만이 아니고 엄마도 자라는 과정이었다. 웃다가 울다가 이마를 '탁' 치게 하는 육아서라니!

'다정한' 관찰자가 되고 싶다.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그런 소망을 담아 ‘다정한’ 단어를 넣어 브런치 닉네임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다정한 시선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눈빛이 다정한 것이 아니다. 다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고 싶다. 내 아이에게 가장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지만 그것은 꽤나 도전적인 과제다. 소망이 간절하긴 해도 수양이 덜 된 관계로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화를 참느라 나의 소망은 잊히기 일쑤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나의 소망은 좀 더 범위를 넓힌다. 많은 아이에게 누군가의 다정함이 가닿았으면 좋겠다. 부모라면 좋겠지만, 학교 선생님이어도 좋다. 친구, 옆집 할머니, 지나가는 아주머니 누구라도 좋다. 다정함 속에 파묻혀 살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어디선가 다정한 누군가와 자주 마주쳤으면 좋겠다. 그렇게 겪은 다정함은 슬픔을 밀어내고, 시련을 극복하고, 희망을 품고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최근에 읽은 청소년 소설 '엑스트라'에는 다정한 엄마가 나온다.  

"엄마, 나 학교 그만둔다고 할 때, 왜 안 말렸어?"
전부터 궁금했지만 미뤄 둔 질문이었다. (중략)
"엄마가 누구들처럼 대단하고 화려한 인생을 살진 못했지만, 이 나이만큼 살다 보니까 그 값으로 깨달은 것들이 있어."
나는 엄마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누구나 살면서 이해받지 못할 선택을 할 때가 있다는 거야. 그런데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니더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건 어쩌면 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을 수도 있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쉽게 이해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있다는 건, 정말 외로운 일이잖아. 엄마는 네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생각을 많이 했어." 『엑스트라』지혜진 장편소설

친구가 거의 없는 주인공 신혜지만 학교에서 그녀를 알아봐 주고 다가와 준 친구도 있었다.

이 학교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리고 학교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은 애라는 걸 알아봐 준 한 명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혼자인 적은 없었던 셈이다. 『엑스트라』 지혜진

친구들 무리에 속해 있는 줄 알았지만 친구들 사이에 자리가 있었을 뿐, 주인공의 존재는 없었다. 친구들은 주인공을 있으나마나 한 사람 취급한다. 먼 길로 돌아서 학교에 가는 주인공은 차라리 길을 잃고 싶을 만큼 학교 가기가 싫다.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의 다정함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뒤늦게 깨달은 친구의 다정함에 용기를 얻는다. 주인공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또 다른 친구를 알아봐 주는 다정함을 발휘한다. 다정함은 학습되고 전염되는 것이 틀림없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양해서 강력한 다정 바이러스가 되고 싶다. 다정하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았다. 多情하다. 정이 많다는 뜻이다. 유의어로는 따뜻하다, 다정다감하다, 살갑다, 애틋하다, 의좋다 등이 있다. 이 중 하나만 해도 다정해지는 것이니 할 수 있을 만한 걸로 잘 골라서 요리조리 다정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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