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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28. 2024

첫인상, 망해도 괜찮아

아이가 유치원 다니던 동네를 떠나 학교에 입학했다. 알던 사람은 하나 없고 늘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쳤다. 등하굣길에 마주치며 엄마들과 인사하는 시간, 5초 정도 되는 것 같다. 상대방이 나의 첫인상을 결정하는데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첫인상 5초의 법칙이라는 책도 있던데 그 안에 승부를 봐야하는 구나. 좋은 첫인상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것이 새로운 동네에서의 성공적 적응에 첫걸음이 될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노력하다가 무리하며 오히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 마주쳤을 때 첫인상의 실수를 만회해 보려고 또 무리를 한다. 이번에는 커피를 마시는 모임! 좀 더 긴시간이 주어졌으니 다른 작전을 펼쳐본다. 경청이 중요하다고 하니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해 볼까. 말 한마디 안 하고 듣기만 하다 보니 이건 아닌 거 같아 말을 꺼내려니 횡설수설이다. 황급히 입을 닫고 나머지 시간엔 또 듣기만 한다. 안타깝게도 나의 애씀은 그렇게 적정선을 찾기 못한 채 부족함과 과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점점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무려 막다른 가파른 내리막길. 아, 망했다.


인상 印象 [출처: 다음 어학사전]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했을 때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느낌이나 그 작용


혼자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남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나의 장점과 매력은 없을까.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라 사회성이 떨어졌나. 첫인상이 어렵다면 볼수록 매력인 사람을 표방하며 혼자 조용히 나만의 내공을 키우는 게 나을까. 나는 남들을 첫인상으로 평가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여기서 말하는 첫인상이란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 이라기보다는 첫 만남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말한다. 낯선 사람을 많이 대하는 직종의 일을 했다. 진흙 속 진주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하고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꾸며진 첫인상에 속기도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며 표본의 값은 점차 커졌지만 결괏값은 수렴하지 않았다. 사람 볼 줄 아는 예리한 눈이 생길 거라 기대했는데 그것은 굉장한 오해였다. 그저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인간 군상만이 남았다. 첫인상이 전부가 아니며 그것을 다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은 남았다. 알면서 왜 이리 첫인상에 집착하는가. 잠깐 만나는 그 짧은 시간을 마치 회사 면접에 들어간 것처럼 긴장한다. 마주친 지금 이 순간, 긍정적 인상을 받지 않으면 안 돼! 불합격하고 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처럼 마음에 부담을 가득 안고 첫 만남에 임하고 있었다.




다행히 세상에는 배울만한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어른답게 나이 든 사람, 마음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 인생 2회 차인가 싶은 마음 씀씀이를 지닌 사람, 나의 부족함과 욕심을 보듬어 품어주는 사람. 모든 면이 완벽하게 훌륭한 사람은 드물게 있겠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각자 훌륭한 점 하나씩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나면서 많이 배웠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장점이 있고 그 장점이 가닿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에게는 부담 갖지 않고 무리하며 다가가지 않아도 한없이 이해받고 인정받을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모임에서 정해진 따스한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책을 편한 마음으로 힐링하며 읽다가 의외의 지점에서 깨달음과 마주쳤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최서영

결국 오해받지 않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것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갈팡질팡 했던 나의 헛된 애씀의 시작점이었다. 그걸 내려놓는 것이 해답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직도 가끔씩 그 욕망이 불쑥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어 또 고민에 빠지고 무리를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좋은 사람을, 좋은 책을 만나 다시 진정시키면 된다고 위안한다. '오늘보다 더 근사한 내일을 위한 인생 길잡이'라고 소개하는 이 책을 보며 고개 내미는 그 욕망을 책 속에 꼭꼭 끼워두고 덮는다.


의도라는 건 행동하는 나의 몫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나는 나의 몫까지 밖에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자. 상대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내가 해주고 싶은 만큼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최서영에세이


인간관계를 위해 너무 열심히 노력하지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애쓰지도 말자. 내가 편하고, 내가 자유로워야 내가 만들어 가는 관계도 그런 모양새가 된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최서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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