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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15. 2024

도시락에 핫팩을 넣으면 생기는 일

아이가 방학특강을 다니며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게으르고 준비성 없는 엄마는 학원 가기 하루 전에야 부랴부랴 도시락을 준비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배달이 빠른 배달천국, 한국! 그걸 믿고 더 게을러지는 것은 아닐까 핑계를 대본다. 내일까지 배달가능한 도시락 중에 리뷰와 판매량이 가장 많은 순으로 정렬해서 아이에게 골라보라고 건넨다. 클수록 취향도 확고해져서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만족도가 가장 큰 요즘이다. 다행히 아이가 고른 것이 적당해 보여 바로 주문을 한다. 무사히 다음 날 도착해서 도시락을 쌀 수 있었다.


학원을 다녀온 아이에게 물어보니 음식이 따뜻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가보는 학원에, 다들 도시락을 시켜 먹고 자기만 싸 온다고 했는데 음식까지 따뜻하지 않다고 하니 매우 신경이 쓰인다. 다음 날에는 조리를 끝내자마자 도시락 통에 담아본다. 밥도 다 되자마자 막 담아서 보낸다. 학원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에게 묻는다.

"밥 맛있게 먹었어? 오늘 어땠어? 밥이 또 차가웠어?"

"글쎄, 차갑진 않은 거 같아."

"그래? 그럼 집에서 줄 때처럼 따뜻해?"

"에이, 그렇지는 않지. 도시락이 차가워지는 것은 막아주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뜨거운 상태로 유지시켜주지는 않는 것 같아."

아이가 학원에서 오늘 뭘 배웠는지는 아예 뒷전이다. 온통 신경이 도시락에만 가있다. 예전에 중학교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때 분명 따뜻한 국을 먹고 반찬도 밥도 따뜻했던 것 같다. 보온 도시락인데 그저 차가워지는 것만 막아준다니 이상하다. 아무래도 도시락을 잘 못 산거 같다. 리뷰에는 분명 5-6시간 까지는 따뜻하다고 했는데 그 리뷰 하나만 보고 다른 건 자체적으로 걸렀나 보다. 하지만 한 달 쓰고 언제 쓸지 모르는 도시락을 또 살 수는 없는데 어쩌나, 고민이 시작된다.


그러다 단체톡방에서 솔깃해지는 정보를 획득한다. 모르는 게 없는 분은 역시 모르는 게 없다. 핫팩을 같이 싸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당장 실천에 옮겨본다. 학원 다녀온 아이에게 물어보니 엄지척을 해 준다. 아주 따뜻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락에서 꺼내 핫팩을 들고 올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아이는 처음 가보는 학원인데도 적응을 잘해주고 있다. 일주일 째 되던 날엔 다녀와서 간식을 먹다가 갑자기 엄마가 해준 밥이 정말 좋다고, 최고라고 했다. 매일 밥을 해줄 때 못 듣던 찬사라고 너무 좋다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아이는 종종 그런 말을 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도시락 속 핫팩이 엄마와 딸 사이도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를 새로운 곳에 보내고 그곳에 적응하여 잘 지내는지 살피는 것이 키우는 일의 대부분 인 것 같다. 그런 경험이 앞으로의 긴 인생을 살 때 필요한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한다. 새로운 학원에 잘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 아이를 생각하며 준비한 점심을 먹고 잘 지내고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이 아이에게 핫팩과 함께 전달된 것 같다. 그걸 느끼고 표현해 준 아이가 고맙다. 이제 일주일쯤 지났으니 곧 아이에게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니, 수업에 참여는 잘하고 있니 욕심 가득한 질문을 할 테지만 이 글을 들여다보며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비단 아이에게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온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인터넷에서 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아이의 가방에 메모지가 붙어있었는데 그 메모지에는 아이를 놀리는 말이 쓰여있었다. 따돌림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르는 척 메모지를 떼어주고 가거나 메모지를 떼주며 아이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을 한마디씩 해주고 갔다. 몰래카메라였던가 여하튼 꾸며진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 그런 일을 직접 겪지 않았어도 같은 세상에 사는 누군가가 나를 신경 쓰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마주친 생판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 오늘 누군가 나한테 불친절하게 했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였으면 친절했을 거라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불친절한 그 사람도 오늘 지독하게 힘든 일이 있었을지 모르니까. 길거리에서 직접 누구를 만나 온기를 나누지 않아도 이런 생각으로, 알 수 없는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으로도 온기를 전할 수 있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다양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힘들거나 지치는 일이 생기면 그것을 헤쳐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타인과 다른 나의 상황을 100% 알 수 없고 그것을 안다 한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을 테니 냉정하게 보여도 극복은 스스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걸 헤쳐가고 해결해 갈 수 있는 힘은 다른 사람이 줄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 주었던 마음과 도움을 주려고 하는 손길을 기억하면 그것이 쓰러지려는 나를 받쳐주고 지지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될 것이다. 오늘은 누구에게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마음의 핫팩을 건네볼까 둘러본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무엇이 성공인가』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여유롭게 커피에 달콤한 도넛까지 곁들이니 다정필터가 제대로 끼워졌다





잔뜩 시행착오 겪는 마흔이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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