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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03. 2024

믹스커피 간 맞추기

믹스커피와 에이스.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이 꿀조합에 빠져들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에이스를 끝까지 잘 적셔 먹으려면 믹스커피의 양을 적게 타는 것이 좋다. 에이스의 반 정도가 적셔지면 먹기가 편한데 그러려면 약간 진해야 간이 맞기 때문이다. 한 김 식혀서 찍어먹는데 커피가 너무 뜨거우면 에이스가 쉽게 부서져서 스르륵 하고 녹으며 커피잔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너무 뜨거워도 안되지만 너무 식어버려도 에이스에 적게 스며들어 커피맛이 덜 나기 때문에 일단 한 봉을 뜯으면 쉬지 않고 먹는 것을 추천한다. 불현듯 더브러라는 과자가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다. 더브러도 커피에 찍어먹던 과자였는데 중간에 금이 가 있어 나눠먹을 수 있고 에이스보다 얇고 단단해서 또 다른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에이스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종된 걸 보면 에이스가 라이벌전에서 이겼나 보다. 믹스커피에 찍어먹을 수 있는 과자가 하나쯤 더 있어도 좋을 텐데 아쉽다. 열심히 찍어먹다 보니 예전보다 에이스가 커피 찍어 먹기에 더 적합하게 바뀌어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쉽게 부서지던 에이스가 요즘은 덜 부서지기 때문인데 착각인지 찍어먹는 요령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더브러와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 끊임없는 연구 덕분이면 좋겠다!

회사를 다닐 때 믹스커피는 하루의 끝을 위로해 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은행을 다녔었는데 영업시간이 끝나고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서 휘휘 저으며 조용해진 객장을 지나면 아, 오늘도 무사히 지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처음엔 한 입, 두 입 소중하게 믹스커피를 마시다 반쯤 남으면 한 입에 다 털어놓고 당을 끌어오려 전투적으로 해야 할 일을 시작하곤 했다.

밍밍해 보이지만 저에게 딱이에요!

에이스랑 먹으려 상자채 사놓고 유통기한 전에 먹어버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먹던 믹스커피였는데 요즘에는 에이스 없이도 자주 마신다. 집에서 커피 마실 일이 있으면 첫 잔은 믹스커피다. 믹스커피에 중독성이 있다는 말이 아무래도 사실 같다. 처음엔 좀 물을 많이 넣어 싱겁게 먹었는데 요즘은 약간 진하다 싶을 정도로 물을 적게 타 먹는다. 남편은 장거리운전을 하면 아이스믹스커피를 요청한다. 달달하고 시원하니 졸음과 피곤을 쫓는데 제격이라고 한다. 아이스믹스커피는 특히 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번 타다 보니 아주 적당한 아이스믹스 커피의 간 맞추는 법을 터득했다. 보통 믹스커피 2봉에 뜨거운 물을 작은 컵 반정도를 붓고 잘 녹인다. 그런 후에 얼음을 탄 찬 물을 작은 컵(아마도 100ml 정도)에 가득 부어 넣는다. 그러면 나에게 딱 맞는 아이스믹스커피가 된다.


누군가에 믹스커피를 타 줄 때는 유독 간 맞추기에 집중하게 된다. 이 정도? 하다가 마지막에 물을 또 찔끔 더 넣어본다. 먹는 사람의 표정도 살피게 된다. "어때, 괜찮아?" 믹스커피에 간 맞추기가 음식 간 중에 가장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진다. 곰탕집에 있는 소금통과 순댓국 집에 있는 다진 양념 통을 생각하며 국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국물의 간에 더 진심이라 믹스커피의 간에도 이토록 정성을 들이는 것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그러다 간이라는 것이 애초에 얼마나 상대적인 개념인가 생각해 본다. 어떤 이에게 짭짤한 간이 어떤 이에게는 싱거울 수 있다. 결국 취향의 문제 아닐까.


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나 욕구 따위가 기우는 방향. [출처: 다음 국어사전]


요즘처럼 대중의 취향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기 있는 글을 쓰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막상 조회수가 조금 오르면 날 아는 사람이 눈치채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내 글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닐까 겁을 내게 되면서도 말이다. 대중의 취향이라고 생각한 글감으로 글을 쓰는데 몇 줄 쓰다마는 경우가 있다. 대중의 취향이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누구의 취향에 맞추기보다는 내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자 글이 술술 써진다. 술술 써지는 글은 읽는 이에게도 술술 읽히지 않을까. 내 취향과 다른 소재의 글인데도 낯선 소재가 오히려 더 궁금하기도 하고 글쓴이의 심정에 공감이 가기도 했던 글은 아마 진솔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며 쓴 글이라 여겨진다.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덕 본 사람들 중 하나는 대중적이지 않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 같다. 동네에서는 같은 취향의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표본을 도시로 넓히고 나라로 넓히고 세계로 넓히니 엄청난 수가 채집되는 것이다. 혼자 외롭게 취향을 즐기다가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나누며 즐길 수 있게 되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 하고 남들도 나와 같이 열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같이 좋아하자고 강요하는 마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취향을 궁금해하는 마음이었으면 한다. 내 취향이 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의 취향에 우르르 따라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 가만히 날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취향은 무엇인지 찾고 수많은 다른 취향들을 존중할 수 있길 원한다. 취향이야말로 존중이 많이 필요한 영역이었구나.

비록 내 취향은 룰렛을 돌려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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