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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10. 2024

전생에 마부였던가

라이딩을 하다가 든 생각

방학이 시작되면서 방학특강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셔틀이 있다고 한다. 그건 참 고마운 일이었지만 갈 때 셔틀시간이 애매해 결국 올 때만 타기로 했다. 라이딩 스케줄 하나 추가요!

혼자 학원을 가지 못하니 혹은 보내지 못하니 걸어서 라이딩하고 차로 라이딩하고, 이래저래 라이딩이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하루의 스케줄 반은 라이딩이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라이딩이라고 해봤자 같이 손잡고 피아노학원에 가거나 얼마 안 되는 거리의 영어학원에 내려주는 것뿐이다. 어마어마한 교통량을 뚫고 가야 하는 중고등학생 때의 학원가 라이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벌써부터 치이는 이 기분은 무엇인지. 학원을 함께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시간이 잘게 쪼개져 사이의 시간을 활용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하교하고 나면 이제 나의 하루는 끝이 났구나 싶다. 물론 아이의 하루를 함께하는 것이니 의미가 있고 자투리 시간도 충분히 잘 활용하는 사람도 많던데 자꾸 투덜 되게 된다. 걸어서 피아노 학원 데려다주고 나면 50분 만에 데리러 가야 한다. 장이라도 보면 집에 들러 장바구니를 놓자마자 나와서 뛰어야 시간에 맞출 수 있다. 도서관에 가서 이 책 저 책 둘러보며 빌렸다가는 다시 또 뛰어야 하는 신세다. 예약 책을 후딱 찾고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한다. 이번에는 영어도서관에 데려다준다. 영어도서관은 그래도 1시간 이상이라 다행인데 집에 왔다가기에는 애매한 거리라 근처 커피숍에서 다른 엄마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혼자 책을 읽는다. 아이가 어리니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지만 어릴 적을 생각하면 꽤 먼 거리도 혼자 다녔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이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얼마 전에 셔틀을 타고 내리는 유일한 학원 하차독립을 시도했다. 바로 집 앞에서 내리니 혼자 들어오라고 했다. 왔다 갔다 얼마 안 되는 것 같아도 저녁준비 시간이 왠지 느긋하게 느껴졌고 아이도 같이 타고 오는 언니와 잠시 이야기하며 오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다음 날 학교 알리미와 엄마들 단체톡방에 난리가 났다. 셔틀 내리는 아이에게 말을 걸며 유괴를 시도한 수상한 사람이 있었다며 당분간 조심하시라고 했다. 우리 아이가 셔틀 내리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 다시 또 나가야겠다. 그렇게 잠깐의 자유도 삼일천하로 끝이 났다. 요즘 사회가 너무 무섭다는 이유로, 큰길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못 믿는다는 이유로 나의 자유와 아이의 독립심은 어딘가에 꽁꽁 묶여 표류 중이다.






얼마 전에 연간 계획을 짜는 강의를 듣다가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꼽아보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여러 단어 중에서 내 눈에 들어온 단어 중 하나는 '인정'이었다. 몇 단어만 꼽아봐야 해서 최종적으로 고르진 않았지만 인정욕이 강한 사람이었나 가만히 생각하게 되었다. 육아를 이유로 퇴직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이제 어디 가서 칭찬을 듣나 하는 것이었다. 좋은 성과를 내서 칭찬을 듣거나 탁월한 결과는 아니어도 일을 끝마치면 스스로 무사히 끝냈구나, 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업무를 할 때는 쉽지는 않더라도 칭찬과 인정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반면에 집안일과 육아의 영역은 그렇지 않았다. 늘 할 일이 있고 끝을 정할 수 없는 연속되는 과정일 뿐이었다. '오늘 저녁 설거지는 정말 깔끔하게 잘됐구나!' '어제 너의 육아는 정말 차분하고 너그러웠어!' 이런 칭찬 들어본 적 있는가? AI에게 시켜서 단조롭게 뱉은 것 같은 아주 어색한 대사 같다.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자의 업무영역으로 여긴다면 어떨까.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니 어색한 것 아닐까. 전업주부로서 성취감을 느끼고 존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나온 답은 미니멀리스트였다. 미니멀리스트가 받는 찬사가 살림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칭찬과 인정 같았다. 맥시멀리스트인 데다 정리도 잘 못해서 누가 봐도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칭찬이 많이 고팠나 보다. 어쩌면 엄마들이 못다 이룬 자신의 꿈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교육에 매진하는 이유도 그걸 통해 육아의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길거리에 시간과 노력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나는 마부정도의 쓸모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이건 누가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든다. 그럴 때면 나의 쓸모를 좀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일을 다시 해볼까 싶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도 나이제한이 있다는데 하물며 경단녀 취업은 얼마나 어려울는지. 취업사이트를 살피다 보면 무력감이 들고 허무함까지 느껴진다. 엄마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이런 감정을 다들 한 번씩은 느낀다고 했다. 그날도 반복되는 생각들을 푸념처럼 늘어놓고 있었는데 나에게 건넨 그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표현에 미숙해서 ‘약간‘이라 했지만 실은 엄청 감동했다.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러려면 한 스푼정도 남이 해주는 인정과 칭찬이 필요하다. 그때 99도씨의 물이 100도씨로 끓을 수 있게 된다. 인정해 주는 그 한 마디에 이제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엄마의 정성과 노력이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고 아이 손톱, 발톱에라도 티클만큼씩이라도 쌓이고 있다면 된다.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쓸모가 되겠지. 의미 없는 줄 알았던 라이딩에서도 엄마의 사랑이 아이 마음속에 사락사락 쌓이고 있다면 충분하다. 오늘은 나의 쓸모를 무려 세 번이나 확인 가능한 스케줄이다. 영어학원 갔다가 피아노 갔다가 줄넘기 가자,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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