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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13. 2024

남편은 주말에 아침 먹는 스타일

주중에 남편은 아침을 먹지 않는다. 아침에 커피를 싸주는데 회사 도착하면 커피만 마실 때도 있고 가끔 예정된 일이 많으면 빵이나 김밥, 토스트 등을 사 먹기도 한다고 하길래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차려주겠다고 했다. 워낙 일찍 출근해서 그 시간에 먹기 부담스러울 것 같다며 사양하는 남편에게 두 번 묻지 않고 고맙다고 했다.

얼씨구나, 쾌지나칭칭나네.

주말은 다르다. 주말은 꼭 아침을 먹는다. 정확히 말하면 아침을 차려 먹는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침대에서 "다정아, 엄마 밥 먹으라고 깨워." 하는 말에 눈을 뜨거나 일찍 일어날 때는 식탁 차리는 것을 돕는다. 잠이 가득한 아주 달콤한 주말 아침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간장계란밥에 소시지, 냉동식품 조리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더니 요리유튜브를 봐가며 연구해서 이제는 카레, 하이라이스, 볶음밥, 오므라이스, 미역국 등 레퍼토리가 매우 늘었다. 서점에서 요리책을 뒤적일 때는 진짜 이 남자가 어디까지 변신하는 건가 했는데 어려워 보였는지 막상 사지는 않았다. 결혼하고 시댁에서 다 먹은 밥그릇을 싱크통에 넣는 남편을 보고 시부모님은 어찌나 놀라셨는지. 그만큼 부엌 근처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변한 자신이 본인도 꽤 뿌듯했던지 남편은 내 친구들을 불러다 밥을 해먹이기도 하고 친정에 갈 때 밑반찬을 해가기도 하고 회사식당에서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점심을 해주기도 할 만큼 요리에 자신이 붙었다.

자신이 원하는 메뉴로 아침을 차릴 수 있고 배고픈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바빠서 주중에 육아에 참여를 못하고 주말에는 소질이 없어서 육아에 참여를 못했는데 아침 차리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대체하는 것은 마음의 위안이 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주변에서는 밥 하는 남편으로 어깨가 으쓱할 만큼 칭찬을 받는다. 그야말로 일타쌍피다, 아니다 일석삼조까지도 되는 듯하다. 이만하면 주말 아침을 투자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게 주말마다 아침을 하는 남편이 되었다.




남편은 엄청난 계획형의 사람이다. 술에 취해 와도 책상 위 정해진 자리에 지갑, 시계, 전자담배를 올려둔다. 자기 전에 내일 입을 옷을 꺼내놓고 자는 것도 루틴의 일부분이다. 집에서 나서기 전에는 '좌담우핸후지'를 읊조린다. 왼쪽 주머니에 담배, 오른쪽 주머니에 핸드폰, 뒷주머니에 지갑을 챙긴다. 왜 이렇게 바쁜 아침에 오랫동안 샤워를 하냐고 물으니 뜨거운 물을 맞으며 오늘 할 일을 정리해 본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자기 방을 정리한다. 정해진 것을 깨는 것을 매우 불안해한다. 반면 나는 딱 반대의 사람이다. 외출하려고 집을 나선 후에도 필요한 물건을 챙기려 현관문을 1번 이상 다시 연다. 그러고도 밖에서 늘 '아! 그거 챙겼어야 했는데!'를 외친다. 물건을 어디 뒀는지 몰라서 찾다가 인생을 다 보내겠다 싶기도 하다. 일은 후다닥 하는 게 습관이다. 식당에서 같은 메뉴는 잘 시키지 않고 같은 목적지를 가도 새로운 경로로 가보는 것이 취미다. 이런 내가 남편을 보면 늘 답답했다. 저렇게까지 꼭 정해진 루틴을 지켜야 하는 걸까. 지금 시간이 없는데 좀 서둘러야 하는 것 아닌가. 루틴을 따르고 지키다 보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열에 한 번뿐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놈의 루틴, 루틴! 그런데 내가 그 루틴의 덕을 보게 될 줄이야.

주중과 같은 루틴을 유지하고 싶은 남편은 주말에도 출근할 때처럼 일찍 일어난다.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배가 고픈 남편은 주전주리를 하며 기다리다 못해 아침을 하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을 하기 시작한 것은 루틴 덕분이었다. 작은 습관들을 지키고 그것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작은 일을 매일매일 실행하는 것은 하루에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습관의 재발견』스티븐기즈.


닭장 안에 갇힌 듯 갑갑한 하루 같아 보였는데 달리 보인다. 매번 허둥대는 나와 달리 남편은 시간을 정돈해서 단정하게 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저게 습관과 루틴의 힘이구나. 일의 진행이 더딘 것 같았는데 마치고 나서 수정하고 보강하기 바쁜 나와 달리 남편은 진행해 가며 점점 완성도가 높였다. 갑자기 그런 점을 배우고 싶어 져서 열심히 습관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동기는 믿고 의지할 수 없다. 그것이 당신의 감정과 느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를 믿고 의지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습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희한하게도 '감정'이 연루되지 않는다. 그 행동에 대한 감정은 점점 무뎌진다. 습관이 주는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거부감이 적어지고 점점 자동화된다는 점이다. 『습관의 재발견』 스티븐기즈.
위대한 성과는 결코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당장 오늘 작은 성취를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 『1日 1行의 기적』유근용.


내 삶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작은 습관을 더하고 있다. 작심삼일을 막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인증을 한다. 매년 초 습관처럼 구입하는 스케쥴러를 올해는 제대로 사용해보려 한다. 정해진 시간에 알람이 울리면 일정 시간 동안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의 하루도 조금씩 정돈되어 가며 단단해지는 것 같다. 주중 아침엔 간헐적 단식으로 아침을 건너뛰거나 과일 등으로 간단하게 먹는 편이다. 그럼 남편이 해주는 아침은? 주말 아침에는 나의 소중한 잠을 위해 루틴은 가볍게 깨주기로 했다. 정해진 것은 늘 깨뜨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답게. 남편은 정해진 루틴을 지키고, 나는 정해진 루틴을 깨며 서로 만족스러운 주말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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