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삶은 어쩌면 소설이라 해도 잘 팔릴 드라마이다.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해서 작품을 써가는 부분이나 잘 나가는 작가로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싱을 수상했으면서도 드라마 주인공 같은 반전 죽음으로 사라지기까지. 작가는 스스로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과 닿아있는 느낌이 든다.
노인과 바다는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문장에 복잡한 미사여구가 거의 없이 간결하고 깔끔해서 읽어나가는데 무리가 없고 내용 또한 재미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예술적 가치가 있었나?라는 물음에 대하여는 모두 제각각인 점도 흥미롭다.
산티아고노인은 운이 다한 80대의 어부였다. 운이 다했으므로 몇 달 동안 고기 한 마리 구경조차 못했다. 당연히 보조 선원이던 소년(마놀린)의 부모도 노인의 배를 타지 말라고 했다. 노인은 굴하지 않고 매일같이 운명을 한꺼번에 뒤엎어버릴 먼바다의 큰 꿈을 꾸며 준비를 했다.
마침내 운명의 날. 조각배에 마른 몸을 싣고 굳은 손으로 노를 저었다. 마을에선 사라진 노인을 찾기 위해 비행기까지 띄웠고, 노인은 야구경기를 벗 삼아 몇 날 며칠을 참고 참으며 씨름하던 끝에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크나큰 물고기를 낚시에 걸었다. 이제 끝났다던 운명은 더 이상 노인에게 적용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시련이 노인을 맞았다. 한두 마리에 불과하던 상어들이 피 냄새를 맡으며 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밤새도록 지친 노인을 괴롭혔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청새치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노인은 소년에게 “좋은 창을 배에 가지고 다녀야 한다.”라고 말한다.
작품에서는 주인공 노인의 상대역에 소년을 등장시켰다. 노인과 소년, 노인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반면 소년은 때 묻지 않아 순수하다. 노인은 운이 다했고 소년은 운이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대립방식이 감정을 계속 이어가게 한다.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고 줄거리 정도만 아는 사람은 노인이 실패를 했다고 생각한다. 3일이나 노력해서 물고기를 잡았지만 상어에게 뻬앗겼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노인과 마놀린은 노인이 성공한 것을 안다.
그렇게 큰 물고기를 잡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과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노인과 바다는 결과를 보기 위한 책이 아닌 과정을 보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만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에서 노인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그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