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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May 02. 2024

황혼육아계약서 2


계획한 퇴직은 삼 년 후였다. 

정기적인 지출이 확실히 줄어드는 그쯤에는 정규직이 아닌 파트타임으로 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아직은 일을 놓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 아쉽다.

손주를 만날 즈음에는 일하지 않아도 여유로우면 얼마나 좋을까만 나의 몽상이었다. 

딸도 사위도 그 정도 사정은 알고 있어 엄마에게 일정한 생활비를 육아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에 암묵적 동의를 했다. 육아 주도권을 내가 갖는 것에 합의한 것이 첫 번째 회의 결과였다.


구체적으로 황혼 육아에 접근하기 위해, 나의 육아태도 정립을 위해 책을 읽고 인터넷검색을 계속했다. 

육아계약서를 발견했다. 관심이 생겼다.



사전 협의된 조항이 갈등 줄여…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라


자식 농사 끝. 자식의 자식 농사 시작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손주, 잘 키우는 데 힘을 보태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친구처럼 잘 지내던 모녀 사이도 아이를 맡긴 후로는 사사건건 갈등이다. 어려운 고부 사이엔 말 못 할 갈등이 켜켜이 쌓인다. ‘육아’라는 책임 아래, 부모와 조부모 사이 갈등을 줄이고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 번의 ‘사전 미팅’을 해라

아무리 사이좋은 부모 자식 간이라도, 구체적인 조항 없이 시작하면 육아가 희생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협상 과정에서 자녀를 키우던 옛 기억을 되새기다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자녀의 성장기에 나타났던 행동 과잉과 결핍을 예방할 수 있다. 감정이 상하기 시작하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지도 모른다. 협의가 끝난 후에는 아이를 맡기는 사람과 맡을 사람 사이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보자. ‘부모와 자식 간에 계약서라니, 너무 딱딱하고 서운한 절차가 아닐까?’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할머니의 노고를 존중할 수단이며, 할머니는 노후의 ‘활동’ 중 하나로 긍지를 가질 수 있다. 







가족 육아도 업무다


계약서에 포함해야 할 항목은 △계약 기간 △근무 장소 △업무 내용 △주 소정 근로 시간 △근무일 및 휴일 △임금 총 6가지다. 계약서는 1년 단위로 갱신하는 것이 좋다. 기한 없는 육아는 의욕과 책임감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부모는 육아의 조력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만 맡는다. 때맞춰해야 하는 식사, 약 복용, 낮잠 등을 챙기고, 아이의 청결을 유지하거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손주 육아에서는 ‘적정한 양육비 산정’이 더욱 중요하다. 임금은 가정의 상황에 따라 협의를 통해 책정하고, 육아의 대가로 받은 돈은 자신을 위해 쓰자. 아이를 위해 따로 지출해야 할 비용은 영수증을 청구하거나 전용 카드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노후의 자부심이 될 손주


조부모가 육아에 참여하게 되면, 조부모뿐 아니라 다른 구성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조부모는 ‘육아 베테랑’으로서 인정받고, 건강한 일자리를 가질 기회가 된다. 조부모의 손에 자란 손주는 다양한 세대의 문화를 고루 경험하게 되고,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한다. 아이의 부모는 조부모와 양육관이나 육아 고충을 나누며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2022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황혼육아 실태 조사’ 참조하여 발췌함.




인터넷 검색 결과를 다 받아들이는 편은 아닌데 이 글들은 마음에 많이 남았다. 특히 육아로 인한 가족갈등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더 신중하게 읽고 생각을 거듭했다. 일정한 양육비를 받는 것은 단순

히 내 자식을 돕는 차원이 아니기에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다.


두 번째 회의에서는 굳이 내가 육아에 나서지 않는 방법도 열어두었고 세 번째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은 쏜살처럼 흘러 연말 세번째 가족회의를 열었다. 


딸과 사위는 우리가 서로 잘하는 부분을 집중해서 하자는 원칙에 동의하나 내가 육아를 전담하며 쉬는 시간 없이 일할 때 건강이 염려된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었다. 나는 나의 전문성을 어느정도 인정하는지와 육아 비용 부분에 대해 혹시나 이견이 없는지 물었다. 여러번 회의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우려스러운 점들도 꼭꼭 짚어가며 논의한 결과 마침내 우리는 합의를 도출했다. 만족스러운 협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들의 유연한 적용을 위해 자료에서 제시한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기로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공동의 목표는 복돌이가 건강 하고 감사를 아는 아이로 키워보자는데 일차적 목표를 세웠다. 그를 위해 아직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지만 우리가 먼저 감사합니다를 생활에 더 많이 노출시키자는 전략도 세웠다. 


많은 경우에서  ‘비자발적으로 육아에 참여했다’고 답한 것에 비해 우리는 자발적이고 계획적인 육아모델을 만들고 있다. 이제 시작이고 아이가 두달이 되어간다. 딸과 사위와 한집에 살며 그들이 보여준 부부패턴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하게되었다. 친정엄마 눈에 보이는 행복한 딸의 모습이 좋았다.

곧 아이들 도움이 없는 나홀로 육아에 돌입하게된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배려하면서 각자 성장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육아(育兒)가 나를 키우는 육아(我)라고 했던 내 오래된 생각이 다시한번 빛을 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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