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 May 09. 2024

이모님, 브레짜 이모님

육아는 장비빨입니다.



먹는 양이 적은 신생아에게 밤중수유는 기본이고 의무이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먹고 싸고 다시 먹고 잠드는 아이와 엄마는 긴 밤동안 수유전쟁을 한다. 감은 눈으로 분유 타서 먹이고 아침마다 젖병에 눌어붙은 분유를 발견하며 슬프다. 거품 나지 않게 흔들라는 분유 타기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살살 돌려가며 분유와 물을 섞다 보니 예외 없이 분유누룽지를 발견한다. 무너지는 엄마 마음.

짜잔, 이를 치유할 무기가 등장했다. 분유제조기.


아이 둘을 분유로 키웠지만 분유제조기라는 말은 손주가 생기며 처음 알았다. 일명 이모님으로 통하는 분유제조기가 정말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으나 MZ에게 이모님은 필수템. 딸의 출산 선물 1호로 분유제조기가 리스트업 되었다. 딸보다 먼저 집에 도착한 기계를 보면서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곱지 않은 질투를 애먼 기계에게 보냈다.

산후조리원 과정이 끝나고 딸이 복돌이와 함께 왔다. 본격 '할맘'이 되었다.


익숙지 않은 기계보다 손이 빠르지 않을까, 내심 신생아실 경력 간호사 숙련된 분유제조 기술을 뽐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뿔싸 이모님이 한 수 위라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다. 젖병 대고 5초 후 면 완벽하게 조제된 적당한 온도의 아이밥이 쪼르르 젖병에 담겼다. 신기한 세상이다. 분유누룽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조제하는 분유계의 바리스타.


낮보다 밤에 이모님의 위력이 빛났다.

갓난이 아우성은 깊은 밤 엘리베이터 타고 전층에 울렸다. 재빠른 입막음만이 인류평화를 위한 유일무이한 방편인데 이모님이라는 고수 덕분에 선방할 수 있었다. 5초 만에 찾아오는 평화. 점차로 이모님을 향한 존경심이 커져갈 즈음이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가 이모님 소리에 반응하는지 브레짜 작동소리와 동시에 뚝. 울음을 멈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이제 이모님만 크게 불러도 눈이 커지며 평화롭다. 그렇게 나는 패, 이모님 승으로 게임은 끝났다.


깔끔 끝판왕 이모님은 기계의 오염을 무자게 싫어했다. 급유깔때기에 불순물이 있다 싶으면 냉정하게 파업이다. 가끔 얄밉기도 하지만 덕분에 안심하고 아기 밥을 위탁하며 기뻤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을 보며  존경심까지 느끼는 일이 또 있는지 모르지만 이모님은 육아계 달인이 맞다. 단 정확한 분유조제는 완성된 양을 기준으로 조제방법을 설명하는데 이모님은 분유량과 물양을 따로 계산하는 오류가 있다. 예로 분유 두 스푼에 물을 부어 녹인, 완성된 양이 60cc가 되는 것이 정석이라면 이모님은 분유 두 스푼에 물 60cc를 섞어서 완성된 양이 70cc가 된다. 이는 물양이 조금 많아지게 되어 제조사권장  정상분유보다 묽게 조제된다.  결과로 아이변이 묽고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리원에서 황금변을 보던 신생아가 갑자기 초록변으로 바뀌면 초보엄마들이 많이 놀란다.

이모님 제조사에서는 이런 점들을 친절히 설명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MZ육아템에 대한 신박한 요소들을 모아서 따로 글을 써볼 생각이다. 이모님 만큼은 정중하게 별도 지면을 할애해 드리는 것이 도리일듯해서 존경심 담아 소개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모님 사랑해요. 딸랑딸랑^^


이전 04화 황혼육아계약서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