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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향기 Oct 23. 2023

이제는 유난 좀 떨며 살겠습니다.

강을 건너는 법

다이어트 3개월 차까지 몸무게가 요지부동이었다. PT를 꾸준히 받다 보니 운동은 어느 정도 몸에 익었는데 식단 조절이 쉽지 않았다. 가볍게 먹으려고 애를 썼지만 갑작스레 회식을 하거나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날에 과하게 먹으면 그간 겨우 줄였던 몸무게가 도로 돌아오다 못해 보너스 무게까지 추가되며 허무해지곤 했다. PT 강사님께 모임이나 행사 때 모인 자리에서 안 먹을 수 없어 난감하다고 했더니 나에게 대뜸 말씀하셨다.


"모임 때 다이어트한다고 말하는 거 쉽지는 않죠. 그래도요. 몸무게 줄이시려면 유난 좀 떠셔야 해요!"

 

나와는 거리가 먼... '유난'...이라는 말이 마치 트라이앵글 소리처럼 맑고 경쾌하게 가슴에 퍼졌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유난 떨며 살아본 적이 없었다.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집에서 부모님의 주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맏이인 언니는 야무져서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오빠들은 공부를 꽤 잘해서 가방끈이 짧았던 부모님께 대리 만족을 주는 존재였다. 언니와 오빠들에 비해 평범했던 내가 집에서 유난을 떨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유난 떨지 않고 튀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등학생 시절엔 몸이 아프면 결석을 할 만도 한데 학교를 안 갈 만큼 아픈 건지 만 건지 헷갈려서 끙끙 앓으면서 학교로 향했다. 그 결과 졸업식에서 6년 개근상을 탔다. 친구가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도로 네가 먹고 싶은 걸 먹자고 하고 친구들이 가고 싶은 곳을 따라가는 스타일이었다. 내 몫을 챙기기는 게 어색하고 괜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도 사무실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 공신이었다. 연가를 가지 않는 분위기가 사무실에 흐르면 나도 휴가를 쓰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무리를 해서라도 회식도 업무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참여했다. 상사님과 초과근무를 할 때면 몇 번은 재방송되는 한 맺힌 과거 이야기나 일도 관심 없는 드라마 이야기를 참고 들어드렸다. 내 소중한 저녁시간이 하염없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세상은 나처럼 분위기를 맞춰주는 사람들 보단 유난 떠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온도에 예민한 사람의 몸 컨디션에 맞춰 냉난방기 온도가 맞춰지고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에게 맞춰 메뉴가 정해지는 식이다. 나처럼 유난 떨지 않는 사람 덕에 갈등 없이 가정과 조직이 돌아가기도 하지만 영혼 없이 내주다 보면 내 취향과 시간도 내주게 되면서 무색무취한 사람이 될 확률이 커진다는 걸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대로 행동하려고 한다. 무리하면서 내 일정을 제쳐두고 회식에 가지 않고 회식에 가서도 무조건 끝까지 남지 않는다. 남들은 연가를 쓰지 않는다 하더라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연가를 쓰고 끌리는 곳으로 자리를 뜬다. 시작이 어렵지 몇 번 하다 보니 별게 아니었다. 하다 보면 원래 그런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좋은 방향으로 먼저 나아가면 주위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이끌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주위 사람들에 최대한 맞춰가며 살아가려고 했던 내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남들 따라먹고 따라가고 남에게 먼저 내주던 내 시간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유난 좀 떨면서 살아보련다.

누구를 위해?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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