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건강검진을 받았다. 지금껏 기초 건강검진 항목 위주로 받았었다. 한창 몸이 안 좋았을 때는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 정도를 추가해서 받았었는데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뇌 검사, 각종 암 검사, 갑상선 검사까지 추가했다. 최근에 가까운 지인들이 몸이 안 좋다는 베드 뉴스가 들려온 게 계기였다. 중년으로 접어들었기에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개량한복 같은 검진복으로 갈아입고 검진실을 차례대로 돌아다니며 관광지에서 스탬프를 찍듯이 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 시스템도 점점 발달하는 것 같다. 손목 팔찌를 검진실 앞에 부착된 센서에 갖다 대면 접수가 된다. 검진 시스템도 점점 AI 기술로 발전하기에 그 길을 쫓아가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것 같다.
갑상선 초음파를 받을 때 검진 화면 하얀 바탕에 검은 반점 같은게 보였다. 간호사님이 그 원의 지름을 측정하는 듯해서 이상이 있는 거냐고 여쭤보니 2주 뒤에 나가는 건강검진 결과 통지서를 확인하라고 하셨다. 아무 일도 아니길 바라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고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상만사는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고 방향을 정하고 걸어가는 게 내 몫이다.
다행히 인바디 검사 결과는 너무나 양호했다. 십 년 만에 모든 항목이 정상으로 나왔다. 그동안 과체중, 비만, 운동 부족이란 말이 익숙했었기에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로 들어선 게 오히려 낯설게 보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운동 많이 하시나 봐요! 이렇게 골고루 근육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어요"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뿌듯했다. 지난 몇 달간 운동과 식이요법을 허사로 한 게 아니란 걸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PT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자랑하고 싶었다.
채혈검사를 하는데도 이상한 자신감이 솟았다. 예전에는 너무 아플 거란 생각에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은 이 고통쯤은 별거 아니지 싶었다. 지난 몇 달간 헬스기구를 낑낑대며 들면서 고통을 마주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수면 내시경을 하고 나서도 먼저 검사를 받고 나온 옆자리에 계신 분들보다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체력이 좋아졌나? 기분 탓인가?!
건강검진을 마치고 병원이 있는 건물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점심으로 죽을 먹었다. 금식을 마치고 마주하는 음식이라 꿀맛이었다. 후식으로 아인슈페너와 빵을 먹었다. 오늘은 건강검진 날이니 특별히 열량 많은 탄수화물과 달콤 달달한 녀석도 허락하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한 점심 데이트를 하면서 건강검진받는 날엔 오늘처럼 서로를 챙겨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갈수록 부부만한 친구도 없다. 알콩달콩 재밌게 살려면 서로 건강도 챙기고 응원해 줘야 한다.
예전에는 건강검진을 소홀히 여겼다. 직장 건강검진이니 직장을 위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귀차니즘을 품고 겨우 발 도장 찍듯이 다녀왔다. 한창 워커홀릭으로 살았을 땐 건강검진을 위해서 왜 하루 종일 공가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반나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업무 중심으로 내 모든 걸 맞추던 때였다. 그 결과 오래가지 못했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단 하루 만이라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내주는 시간은 필요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건강과 체력이 삶의 밑바탕이고, 마음 근육보다 먼저 쌓아야 하는 게 몸 근육이다. 몸 근육이 쌓이다 보면 어느덧 활기가 생기고 마음 근육을 쌓고 싶은 나를 마주하게 된다. 몸에 차오른 자신감으로 다른 일도 오래 재밌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올해 나에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도 감사하고 그 길을 삶의 우선순위로 당긴 건 가장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