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향기 Dec 03. 2023

사십 대, 향기로운 이름 '중간항로기'

이십 대와 삼심 대는 보통 출산기와 육아기라 하고, 오십 대에 접어들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갱년기라고 한다. 그 사이 사십 대는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없다. 육아에서도 해방되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는 시기라 그런가? 훨훨 날아야 할 시점인 것 같은데 어쩐지 마음도 무겁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사십 대에 들어설 무렵 나에게도 이런 시기가 찾아왔다. 느닷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도 힘들었는데 새벽 시간을 짜내서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를 무작정 걸었다. 나는 뒤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노라고 나름 나의 마음과 행동에 의미를 붙여줬다.


지난달 김선호 작가님께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란 주제로 특강을 받았다. 작가님은 40대 무렵을 '삶의 중간항로 시기'라고 알려 주셨다. 사춘기는 왠지 방황을 떠올리게 하는데 '중간항로'라고 하니 나의 길을 찾아가는 시기로 와닿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추의 시 '꽃'처럼 사십 대를 '중간항로'라고 칭하니 나의 현시점이 향기롭게 다가왔다.


작가님은 출산 후 십 년쯤 되면 갑자기 우울, 피곤, 아픔이 찾아온다고 하셨다. 학원, 선행학습, 진로, 하물며 무엇을 먹어야 할지 등등 선택 거리가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미루게 되면 무력감이 찾아오고 결정을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한다. 과감히 버려야 할 선택을 찾고 이왕 선택했으면 의견을 묻지 말고 행동에 집중하는 게 방법이라고 하셨다.


마흔 무렵 나에게도 심리적 변화가 찾아왔는데 작가님 말씀을 듣고서 그 시절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마흔이 되면 저절로 지혜롭고 성숙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릴 적 그대로인 내 모습, 변하지 않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어른들은 "아이들 다 키웠네!"라고 하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 투성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던 아이들은 내 마음을 들어다 놨다 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처럼 카오스 상태가 되곤 했다.


작가님은 중간항로를 잘 보내기 위해서 관계를 리모델링하고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야 하고 구원자를 기다리는 심리적 앉은뱅이에서 벗어나려면 나에게 집중하고 내면의 아이를 찾아서 보내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셨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루틴을 쌓아나감으로써 자기 조절감을 키워나가야 한다.


나의 현재 중간항로는 어떠한가? 때로는 감정에 이끌려 오르막 내리막을 오가긴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람과 환경을 바꿔보려고 떠났고 독서모임 덕에 책을 읽고 좋은 벗들을 만났다. 강점을 이해하게 된 후 목 빼고 남을 부러워하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줄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기에 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은 증상도 줄었다. 글을 쓰면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내면 아이도 달래고 있다. 루틴을 챙기다 보니 가족을 향한 짜증과 질타도 줄어들었다.


내 선택지에서 뺄 것을 더 찾아보고 싶다. 무리하게 뻗어나가는 건 없는지 살펴보고 집안 곳곳 손이 닿지 않은 물건은 보내야 한다. 요즘 홀로 여행을 떠나보라는 말이 마음에 콕 박힌다. 예전에는 혼자 여행 가면 심심하고 외로울까 봐 떠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홀로 떠나도 심심하긴커녕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를 마시다 보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나를 붙잡는 건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여행을 떠나고 돌아왔을 때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은 두려움이다. 이 또한 한 번의 내딛음으로 틀을 깨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검진을 받고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