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꿈꾸며!
대학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분에게서 엊그제 연락이 왔다. 그녀는 현재 퇴직 2년 차이시다. 우리가 함께 갔던 식당 앞을 지나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멀리 떠나온 나를 떠올려주시고 먼저 연락을 주신 게 고마웠다. 함께 근무했던 부서가 신생 부서라 좌충우돌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웃음이 났다.
동료분께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여쭤봤다. 혹시나 하루하루가 지겨우신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심심해서 우울증 걸리신 건 아니죠?"
"심심하긴! 너무 좋아! 어떻게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신기해."
내 기억 속 동료분은 사무실에서 늘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셨다. 외부 재원이 많은 회계 업무를 맡으셔서 골머리를 끙끙 앓으셨다. 어찌나 몸이 안 좋으셨는지 용하다는 민간요법을 받으러 주말 동안 육지에 다녀오셨다는 말씀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동료분은 사무실에서는 힘이 없으셨지만 밖을 나온 순간 180도 달라지셨다. 행사용 다과를 사러 마트에 함께 갈 때 그녀의 검은색 차는 꽉 막힌 도로를 요리조리 피해서 다녔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또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장을 함께 볼 때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회식 때마다 가장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이끄셨다.
돌이켜보니 동료분은 사무직 성향은 아니셨던 것 같다. 활동적인 성향에 사십 년 가까이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아프지 아니할 수 없었겠다. 동료분께 이제라도 풀려나셔서 다행이라고 말씀드리니 경쾌하게 웃으시며 매일 할 일이 많고 갈 데도 많고 자유를 선물 받은 기분이라고 하셨다.
내 주위 퇴직자에게 여쭤보면 퇴직 후 한 달은 출근을 안 해서 편하고 자유롭다가도 한 달을 넘긴 순간 노는 것도 지겹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서 일자리를 다시 찾는다고 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갈 곳이 있어야 하고 어딘가 소속돼야 마음이 편안하고 출퇴근을 해야 잠이 잘 온다고 하셨다. 내 미래도 별다르지 않을 거라 상상하니 어쩐지 우울했었다.
고향에 있는 동료분이 퇴직 후 족쇄가 풀려 훨훨 나는 기분이라니 내 마음도 경쾌해졌다. 정년을 채우는 게 꼭 정답은 아니고 퇴직하더라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근거를 대 주신 듯했다. 현재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자리도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억지로 부여잡고 있을 때 몸과 마음에 신호가 오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일과 함께 관심 분야를 가꾸어야 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길이 열릴지 아무도 모른다. 설령 이 길을 계속 갈지라도 그간의 탐구생활이 제2의 인생에 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