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향기 Dec 11. 2023

행복한 퇴직살이

그날을 꿈꾸며!

대학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분에게서 엊그제 연락이 왔다. 그녀는 현재 퇴직 2년 차이시다. 우리가 함께 갔던 식당 앞을 지나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멀리 떠나온 나를 떠올려주시고 먼저 연락을 주신 게 고마웠다. 함께 근무했던 부서가 신생 부서라 좌충우돌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웃음이 났다. 


동료분께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여쭤봤다. 혹시나 하루하루가 지겨우신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심심해서 우울증 걸리신 건 아니죠?" 

"심심하긴! 너무 좋아! 어떻게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신기해."


내 기억 속 동료분은 사무실에서 늘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셨다. 외부 재원이 많은 회계 업무를 맡으셔서 골머리를 끙끙 앓으셨다. 어찌나 몸이 안 좋으셨는지 용하다는 민간요법을 받으러 주말 동안 육지에 다녀오셨다는 말씀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동료분은 사무실에서는 힘이 없으셨지만 밖을 나온 순간 180도 달라지셨다. 행사용 다과를 사러 마트에 함께 갈 때 그녀의 검은색 차는 꽉 막힌 도로를 요리조리 피해서 다녔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또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장을 함께 볼 때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회식 때마다 가장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이끄셨다.


돌이켜보니 동료분은 사무직 성향은 아니셨던 것 같다. 활동적인 성향에 사십 년 가까이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아프지 아니할 수 없었겠다. 동료분께 이제라도 풀려나셔서 다행이라고 말씀드리니 경쾌하게 웃으시며 매일 할 일이 많고 갈 데도 많고 자유를 선물 받은 기분이라고 하셨다.


내 주위 퇴직자에게 여쭤보면 퇴직 후 한 달은 출근을 안 해서 편하고 자유롭다가도 한 달을 넘긴 순간 노는 것도 지겹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서 일자리를 다시 찾는다고 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갈 곳이 있어야 하고 어딘가 소속돼야 마음이 편안하고 출퇴근을 해야 잠이 잘 온다고 하셨다. 내 미래도 별다르지 않을 거라 상상하니 어쩐지 우울했었다. 


고향에 있는 동료분이 퇴직 후 족쇄가 풀려 훨훨 나는 기분이라니 내 마음도 경쾌해졌다. 정년을 채우는 게 꼭 정답은 아니고 퇴직하더라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근거를 대 주신 듯했다. 현재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자리도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억지로 부여잡고 있을 때 몸과 마음에 신호가 오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일과 함께 관심 분야를 가꾸어야 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길이 열릴지 아무도 모른다. 설령 이 길을 계속 갈지라도 그간의 탐구생활이 제2의 인생에 거름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십 대, 향기로운 이름 '중간항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