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근 May 18. 2024

검은 바다_3

그곳의 과거 2


 그날의 일이 엊그제 같구나, 베니. 그곳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마을은 항상 시끌벅적했지. 새벽빛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부지런한 상인들은 물건을 진열한 채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에게 농담을 던지곤 했지. 어부들은 아침 일찍 잡은 고기를 배에서 육지로 옮기며  장사 준비를 했어. 마을의 어머니들은 장을 보러 나와 여기저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말이야. 그곳이 한창 번영할 땐 정말 볼 만했단다, 베니야. 네가 그곳을 못 본 게 너무 아쉽구나. 그땐 네 나이 또래도 많아서 아이들이 떠들며 웃는 소리가 마을 여기저기서 들리곤 했단다. 정말 즐거웠지. 즐겁고 말고…

 하지만 모두 사라졌단다. 사라지고 말았어. 그것도 고작 하룻밤 사이에.


 처음 그 아이가 마을에 나타난 날이 아직도 생생해. 그날은 유독 태양이 이글거리던 날이었어. 그날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부둣가에 심부름을 가던 길이었지. 놀다가 부름을 받은 거여서 툴툴거리며 걷고 있었단다. 그렇게 터덜터덜 부둣가 쪽으로 향하던 도중,

 ‘꺄악-’

 어디선가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어. 발만 보고 걷던 나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지. 광장 쪽에서 난 소리 같았어.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 무엇보다도 궁금해졌다. 평화롭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래서 심부름도 잊어버리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단다.

 소리의 근원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어. 광장에 가니 사람들이 한 구석에 모여들고 있었거든. 나는 사람들이 모여든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어. 그때 할아버지는 키가 아주 작았단다. 그래서 어른들의 다리 사이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았지. 그러자 그 다리들 사이로 바닥에 주저앉은 제이미 아주머니가 보였어.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있었지. 그리고 아주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말했어.

 ‘뭔가… 짐승 같은 게 내 가방을 낚아채갔어요…!‘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어. 그중에 폴 아저씨와 다른 몇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그것이 어디로 향했냐고 물었지. 아마 들개라고 생각하고 잡으려 했던 모양이야. 그러자 제이미 아주머니는 상가 뒷골목을 가리켰어.

 ‘저기… 저기로 내 가방을 들고 갔어!’

 제이미 아주머니가 손을 뻗자 아저씨들이 빠르게 골목 쪽으로 향했어. 나와 몇몇 아이들도 그 짐승이 궁금해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았단다.

 ‘이 놈의 들개놈들. 요새 자주 보인다더니, 결국에 일을 치르게 도와주는 구만.’

 아무렇게나 너부러져있던 나무 몽둥이를 주으며 제이크 아저씨가 말했어. 아저씨들도 그를 따라 무언가 잡아들고 골목으로 향했지. 그러자 그 그늘진 구석에서 뭔가가 꼼지락 거리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 제이미 아주머니의 가방에 집중하고 있는지 아저씨들이 다가서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지. 그리고

 ‘잡았다, 이 녀석!’

 제이크 아저씨가 그것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어.

 ‘꺄악-’

 하지만 들려오는 건 동물의 소리가 아니었어. 사람의 목소리였지. 그것도 어린아이의 비명이었어. 제이크 아저씨는 예상치 못한 소리에 놀라 뒷걸음질 쳤단다. 그러자 곧이어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골목에서 울려 퍼졌단다.

 ‘으아앙-’

 모두가 당황해 어찌할 줄 몰라했어. 울고 있는 그것이 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들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다들 머뭇 거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정의감이 강한 폴 아저씨만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단다. 정말 아이라면, 어서 빨리 치료해 줘야 할 테니 말이야. 폴 아저씨는 천천히 그늘 쪽으로 다가가더니 그것을 발견하자 잠시 멈칫했어.

 ‘왜 그래, 폴?’

 다른 아저씨가 물었어. 하지만 폴 아저씨는 대답할 기미 없이 우두커니 그것을 바라보았지.

 ‘마, 많이 다쳤는가? 응?’

 제이크 아저씨가 어쩔 줄 몰라하며 폴 아저씨에게 물었어.

 ‘자네들.’

 폴 아저씨가 대답했어.

 ‘이리들 와보게.’

 폴 아저씨의 말에 모두들 천천히 그것 쪽으로 다가갔지. 다른 아이들은 모두 아저씨들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보았지만 그때의 나는 궁금증이 많아서 말이야. 아저씨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단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어. 가까이 갈수록 그것이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냈지. 예상대로 어린아이였어.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 아니 정확히는 그 어떤 것처럼 보였어. 동네에서 흔히 보이던 다른 얘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단다. 아이는 긴 머리는 산발이 된 채 나뭇잎과 흙이 여기저기 뒤섞여있었어. 온몸은 이곳저곳 흙투성이에다 마치 몇 달은 산에서 구른 듯한 모습이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애는 마을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랐어. 자기 체구에 맞지 않게 엄청 큰, 그것도 섬 반대편 몇몇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입고 다닐 법한 두꺼운 가죽 옷을 입고 있었어. 옷도 몇십 년은 된 듯 많이 닳아있어지.

 왼쪽 팔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아이를 신기하게 보던 나와는 다르게 아저씨들은 봐선 안될 것 본 듯한 얼굴로 그 아이를 보고 있었어. 아저씨들의 경악한 표정이 아직까지도 생생해. 아이의 울음소리를 말곤 들리는 것 없는 그 정적을 깬 건 헨리 아저씨였어. 아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

 ‘이거… 이 옷. 그때 그 자가 입고 있던 옷 맞지?’

  그 자? 누구를 말하는 거지? 나는 의아했지만 다른 아저씨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폴 아저씨도 아이를 심각한 표정으로 보기만 할 뿐이었지. 그러자 헨리 아저씨가 이어서 말했어.

 ‘그때 그 사제말이야, 자네들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광장에서 저 옷을 입고서,‘

 ‘그만해, 헨리.’

  폴 아저씨가 헨리 아저씨의 말을 막았어.

 ‘맞아. 어렸을 때였지만 나도 기억나.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던 그 노인네, 그자가 입고 있던 옷이야!‘

 이번에 제이크 아저씨가 말했어.

 ‘그만하게 자네들!’

 폴 아저씨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어.

 ‘그렇지만 폴 자네도,’

 제이크 아저씨가 덫붙였지만 폴 아저씨는 나와 다른 아이들을 힐뜻 보며 말했어.

 ‘보는 눈이 많네. 제이크. 그리고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일이야. 보아하니 이 얘는 숲에 버려진 것 같은데, 옷은 어디서 주은 거겠지.’

그러자 제이크와 다른 아저씨들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주변이 수긍하는 분위기로 바뀌자 무언가 결심한 듯 폴 아저씨는 울고 있던 그 아이를 업어 들고 말했어.

 ‘일단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지.’

 아이는 폴아저씨가 안아 올리자 놀랐는지 울음이 잦아들었어.

 ‘뭐? 폴 자네, 미쳤는가? 영 찝찝한 아이야. 어서 내려놓게.‘

 이번엔 헨리 아저씨가 한 소리 했어. 그러 폴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어.

 ‘모두들 보게나. 어린아이야. 그것도 공격을 받아 다쳤네. 우리 마을이 어린 아이나 두들겨 패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서야 되겠는가?’

 폴 아저씨가 한 마디 하자 다른 아저씨들 모두 아무 말이 없었어. 특히 제이크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였지. 폴 아저씨 품에 안긴 아이는 이제 진정이 됐는지 품에 가만히 안겨 다른 이들을 지켜보았어.

 ‘자, 제이미 씨가 가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구먼. 헨리 그 가방 좀 들어주겠나.‘

 폴 아저씨는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헨리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고 아이를 앞으로 안아 들었어.

 ‘너희들도 어서 돌아가!’

 제이크 아저씨도 나와 다른 아이들을 보며 말했지. 상황은 일단락 정리되어 갔고 모두들 광장으로 발을 돌렸지. 나도 가시 광장 쪽으로 돌아가려 고개를 들자 앞장서가는 폴 아저씨에게 안겨있는 그 아이가 보였어. 귀신같이 산발된 머리. 도대체 어디서 굴렀다 오면 저런 꼴이 날 수 있지? 난 혼자서 생각했단다. 그 특이한 모습에 계속 눈길이 가 그 아이를 바라보니 그 아이도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마주 보았어.


그 까만 눈. 그 아이는 아무런 표정 없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를 지었어.



 


 

 

 

작가의 이전글 재확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