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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근 Mar 23. 2024

몰드

 낯선 도시에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그곳에서 삶을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우연찮은 계기들로 그녀는 그 도시를 선택했다. 그녀는 아주 중심부도 외곽지역도 아닌 곳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선택했다. 창문이 큰 아파트였음에도 빛은 잘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축축한 인상을 주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도적으로 이 아파트를 골랐다. 새로 지은 신식 건물들도 많았지만 왠지 이 건물은 사람 냄새가 느껴졌다. 복도를 지나다니며 그 오래된 세월의 냄새를 맡다보면 어렸을 때처럼 이웃끼리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쉽사리 충족되지 않았다. 타인이란 ‘자신들에게 해를 가할 지도 모르는 미지의 인물’이라는 인식이 커서인가 그녀의 이웃들은 서로 현관에서 마주치거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때에도 인사는커녕 간단한 눈웃음조차 없었다. 하다못해 일상을 늘 같이 보내는 직장 동료와의 사적 만남은 표면적인 대화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녀는 노력했지만 낯선 도시의 낯선 사람들은 도통 그녀에게 쉽사리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방인의 따듯한 말과 살가운 인사에 대한 대답은 대개 차가운 시선이었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웃어넘기던 그녀였지만 그게 계속되니 어느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과의 관계를 포기했다.      

 그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는 홀로 보냈다. 그녀는 일 외에는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쉬는 날에도 대개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게 전부였다. 낯선 도시에서 그녀에게 느껴지는 타인의 흔적은 윗집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였다.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출퇴근 시간에 맞춰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 노후한 아파트가 주는 그 소리는 차가운 그녀의 일상에서 유일한 사람의 온기였다. 그 소리 말고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넘쳐나는 그 도시에서 그녀의 아파트는 무인도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그 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혼자의 삶에 축하해 줄 이 없는 생일은 공교롭게도 그 도시의 축제기간과 겹쳤다. 아파트 밖의 도시는 폭죽이 터지고 즐거운 음악이 흘러넘쳤다. 평소에도  밝았던 밤하늘은 더욱 밝아 보였다. 환한 도시와 어울리게 거리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고 들뜬 표정이었다. 도시는 밝다 못해 온화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파트는 여전히 어둡고 축축했다. 그녀 또한 어둡고 축축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멀리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문자와 전화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지만 그 연락들은 왠지 그녀를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밖은 온화 했기에, 어둡고 축축한 곳에 있는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다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어느 주말 오후, 위층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분주했다. 삐걱거리다 못해 천장이 무너질 듯 소리가 울렸다. 큰 물건을 끄는 소리, 무거운 물건을 내려놓는 소리, 이리 저리 지시하는 듯한 사람들의 웅얼거림까지 들렸다. 윗집은 이사를 나가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더 많이 울리는 삐걱거림에 같이 이사를 준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덕에 괜스레 활력이 났다. 오랜만에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저녁이 되고 윗집의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평소의 삐걱 거리는 소리조차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창밖을 보니 윗집 이웃이 마지막 박스를 그녀의 차에 실고서 차를 출발 시켰다. 이웃의 차가 떠나자 그곳을 비추던 가로등의 불빛도 꺼졌다. 적막했다. 그녀의 아파트는 더욱 더 어두워 졌다.      


 그 시기 이후 그녀는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오른쪽 팔 뒤편에서 푸르스름한 무언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멍울이 진 것 같아 보인 다기 보단 피부 위를 무언가 덮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덩어리가 피부를 대체하고 있었다. 수풀같이 둥그런 게 가장 가생이부터 안쪽까지 점점 진해지는 색으로 퍼져있었다. 그녀는 호기심에 그녀의 팔을 왼쪽 검지로 훑어보았다. 그러자 손가락이 스친 모양대로 살은 움푹 패어 들어갔다. 그리곤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다. 팔은 마치 썩은 야채가 뭉개져 버린 듯했다. 파여져 버린 살점은 그녀의 왼쪽 검지 손가락에 여전히 묻어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떠한 통증도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팔이 아닌 양 아무 표정도, 반응도 없이 무심한 눈동자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손에 묻은 자신의 푸른 살점을 물에 씻어버렸다.       

 또 한 달이 흘렀다. 삐걱거림 마저 사라진 아파트에는 새로 이사 오는 사람 없이 적막 했고 어둡고 축축했다. 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밖의 도시는 그와 대조되게 상쾌하고 온화했다. 하지만 그녀는 교류할 이가 없었기에 여전히 아파트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푸른 덩어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한 달 전에 새겨졌던 패인 모양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덩어리는 그녀의 팔 전체를 덮어왔다. 팔이 점점 그것에 먹혀 오기 시작할 때쯤부터 그녀는 팔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마비가 진행되어 오는 것 같더니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오른손잡이인 그녀가 팔을 쓸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일도 진행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 걱정도, 조치를 취해 볼 의욕도 느끼지 못했다. 수익은 끊기게 되었고, 오른 쪽 팔의 상실로 인해 일상에서 불편함이 많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팔을 돌보지 않았다.      


 시간은 천천히 혹은 빠르게 흘렀고, 이제 그 덩어리는 그녀의 오른쪽 절반이 되어있었다. 그 때 즈음부터 그녀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축축한 아파트 안 침실에 가만히 누워 덩어리가 점차 커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그녀의 하루 일과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커져 가면 커져 갈수록 그녀의 공간 또한 더욱 축축 해져 갔다. 아직 남아 있는 왼쪽의 절반으로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 달라고 요청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혼자 있게 된 시간이 오래된 덕인지 아니면 자신의 괴상한 절반을 보여주기 싫어서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그녀가 먼저 다가서기보다 그저 누군가 먼저 자신을 찾아와 주기만을 바랬다.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못하는 지경이 됐지만 그녀는 그저 자신의 푸른 덩어리가 커져가는 것만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밖은 여전히 극명하게 밝았지만 아파트는 어둡고 축축했다. 어둡고 축축하기에 그녀는 누군가 자신에게 오기를 바라면서도, 그녀는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을 것을 믿고 있었다.      

 시간은 또 흘렀고 그렇게 절반은 대부분이 되어버리고 대부분은 그녀 자신이 되었다. 그 푸른 덩어리는 이제 그녀 자체를 넘어서서 아파트 전체를 넘보는 것처럼 그녀 몸 주변까지 퍼져있었다. 그녀의 침실은 이제 축축하다 못해 벽에 물방울이 고여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형체는 이제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녀의 몸은 기분 나쁜 푸른 수풀 들이 한 무더기로 모여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되어있었다. 그나마 그녀가 ‘아직’ 존재한다는 증거로 그 무더기 위에 두개의 눈만이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때는 그녀의 몸 이었던 푸른 덩어리가 부스러지고 뭉개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먼저 나가 도움을 청할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낯선 도시에서도 그녀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이제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어느 낯선 도시, 창은 크지만 어둡고 축축한 아파트에 홀로 살던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덩어리만 구석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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