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절영 Jan 23. 2024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ost는 Guilbert O'sullivan - Nothing Rhyme

 나는 지금 도착지인 시드니 기준 4시 33분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 내 머리 둘 곳만 있으면 골아떨어지는 습성상 너무 잘 잘 것 같다는 생각과 불편하고 좁으니까 못 잘 것 같다는 생각이 공존했는데 한 네 시간 가까이 잤으니 절반만큼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비행기를 길게 타는 건 처음이라 몰랐는데 불편하게 앉아서 알라딘을 보려다 볼일도 보고 양치도 할 겸 화장실(정말 각오했는데 깨끗하다! 사정상 KTX, SRT, 무궁화호 전부 많이 타봤는데 그것보다 훨씬!)에 다녀왔는데 대부분이 옆, 옆옆 자리가 비어있으면 다들 누워서 자고 있는 거다. 그때 내 기분은 정말.. 그래도 돼? 였다. 내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냅다 누웠다. 잘 때 The best of Gilbert O'Sullivan 앨범을 틀고 헤드셋을 쓰고 잤다. 원래 내가 듣던 노래는 당연히 아니고 아시아나 쪽에서 제공하는 음악 앨범 중에서 조용히 자는 동안 들을 만한 게 이거밖에 없었다. 잠결에 엄청 좋은 곡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제목을 모르니 남은 비행 시간 3시간 33분 동안 이 앨범의 20곡을 전부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동생은 다른 것보다 기내식을 부러워했는데 파스타 vs 소불고기 쌈밥이었다. 나는 당연히 소불고기 쌈밥이다. 그래서 맛은? 음.. 여러분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은 정말 맛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오른편 너머 외국인이 어설프게 쌈을 싸는 걸 봤는데 이렇게 K-푸드가 뻗어가는구나고 생각했다.


 오기 전에 절친하고 가족들한테 편지를 돌렸는데 엄청 후회된다. 반응을 보기 전에 회수해서 불태우고 싶다.ㅇㄹㄴㄹㄴ 내가 불쌍하게 핸드폰 불빛으로 수첩을 비춰가면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예쁜 승무원 언니가 조명키는 법을 알려줬다. "일기 쓰시는 거에요?"하길래 그렇다고 했다. 오늘이 처음인데.. 


탑승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기다릴 때도 거기 있는 대부분이 그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보다는 저녁에 찾아오는 피로가 더 커보였는데 그것도 좋았다. 지금 한 70%가 자고 아기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지금, 무척 앞으로 길어질 여행의 기운 빠지는 전조 같아서,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었다. 저녁 비행기는 그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곧 시드니에 도착한다는 알림 방송에 잠에서 깼다. 비가 많이 내린다.


작가의 이전글 부적격자에게 가족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