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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Apr 28. 2023

경찰서, 어디까지 가봤니?

< 악어와 악어새의 퍼즐 맞추기 >

사회부 수습기자의 하루는 경찰서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마무리된다.

회사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경찰서는 일대 다수가 대결하는 침묵의 전쟁터다. 나의 상대는 지난밤 이 도시의 일상을 지켜낸 경찰인 동시에 나처럼 경찰서를 기웃대는 다른 매체의 동료 기자다.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경찰로부터 가져오는 과제가 매일 아침 나에게 주어졌다.


엄연한 남의 사무실을 돌다 밤을 꼬박 지새운 당직 형사를 만나면 그때부터 눈치게임이다.

간밤의 안부나 근황을 묻는 탐색전에서는 과도한 친절과 과장된 리액션이 필수다. 눈꼬리는 내려가고 입꼬리는 올라간다. 저릿한 두 볼은 일그러지는 표정을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나의 한계치는 시험에 든다.

눈은 얼굴 근육보다 바쁘다. 컴퓨터, 책상, 결재서류, 방금 전 재빠르게 뒤집어버린 보고서. 형광등 아래 슬쩍 비치는 글자의 흔적을 뒤따라가느라 굴러가는 눈동자 소리마저 조심스럽다.


하지만 늘 호기심이 앞선다. 궁금증을 못 이기고 고개가 살짝 기울어질 때면 형사의 눈동자 흰자위로 시뻘건 핏줄에 날이 선다.

그러면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다음 수를 계산한다.

이곳에서 되지도 않는 아양을 떨어볼까. 다른 사무실에 가서 슬쩍 운을 띄워볼까. 쥐뿔도 모르면서 다 안다는 듯 과장을 찾아가 엄포라도 놔야 하나.


보물 찾기라도 하듯 퍼즐 조각을 찾아 끼워 맞추는 게 일과다.

그 조각은 그림이 되기도 하고, 아무 쓸모없는 휴지 쪼가리가 되기도 한다. 기껏 찾아낸 게 휴지 쪼가리일 때는 허무하다 못해 자괴감이 밀려온다.

수습 딱지를 떼고도 퍼즐은 계속된다. 퍼즐 조각을 찾는 요령에 그림과 휴지 쪼가리를 구분하는 눈치가 더해질 뿐이다.




보통의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면서, 경찰서 문지방을 밟을 일이 평생에 몇번이나 있을까.

수습기자 이전의 나는 20여년 동안 한번이었다. 대학생 때 범죄경력조회증명서를 발급받으려 딱 한번이었다.


신문사에 입사한 뒤 일주일이 지나자 첫 임무가 주어졌다.

경찰서에서 간밤의 사건사고를 파악하고 사수인 선배 기자에게 보고하는 일, 은어로 '사스마와리'였다.

지방도시의 경찰서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수습기자의 수는 더 적었다. 파출소나 지구대까지 돌아볼 여력은 절대적으로 없었다.

나는 가장 사건사고가 많다는 경찰서에 배정됐다. 오전 8시 30분에 교대하는 야간 당직조를 만나려면 최소한 오전 7시 30분에는 경찰서 정문을 통과해야 했다. 선배 기자는 굳이 더 이른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두달 교육받고 지방도시로 왔다는 한 방송국 수습기자는 첫날 오전 5시부터 경찰서를 휘젓고 다녔지만, 그 열정은 불과 일주일도 가지 않았다.


경찰서 형사과 문 앞에 섰을 땐 두려웠다.

수습기자에게 '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다리를 꼬고 건방을 떨어야 한다' 교육했다는 옛날옛적 방식을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발걸음은 문 앞에서 맴돌았고, 숨이 멎을 듯 심박수가 널뛰었다.

"안녕하십니까."

간신히 비집고 나온 목소리는 허공에서 조각났다. 잠시 고개를 들어 힐끗 쳐다보던 시커먼 아저씨들이 이내 시선을 거뒀다. 누군지 궁금해 보긴 했지만, 인사를 받아줄 요량은 없었다.

쭈뼛거리는 발끝을 재촉해 명함을 돌려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 수습기자 △△△입니다."


매일 아침 형사과 서무부서에서 사건 일보를 받아 들고, 당직팀을 찾아 취재라는 것을 한다.

지금은 사라진 '기자용 일보'에는 두어개의 사건 정보가 한두줄로 짧게 담겨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경찰과 기자들의 암묵적인 협의로 제공되는 일보에는 흔히 말하는 굵직한 사건은 없다. 대부분 누군가가 몇만원짜리 물건을 훔쳤다거나 취객이 술값을 내지 않아 가게 주인과 다퉜다는 내용이었다.

당직팀에서 살을 붙인 정보들은 짧게는 세 문장, 길어야 다섯 문장으로 정리되는 단신용 기사가 되거나, 혹은 그마저도 되지 못하고 버려졌다.

기사가 되지도 못할 질문에 꾸역꾸역 대답해 주는 것이 당직팀장의 친절과 배려였다.

커피 한잔과 다른 주제의 대화가 더해지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경찰서에서 만난 한 남기자는 여기자인 나를 부러워했다. 대부분 남성인 경찰이 여성에게는 더 친절하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그를 시기했다. '아이고 형님, 담배 한대 피시죠'하며 너스레를 떨고 흡연구역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야속했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으면서 흡연구역을 기웃거렸다.

내 마음을 누군가는 애살이라 했고, 다른 이는 쓸데없는 욕심이라고 했다.

그 마음이 뭔지는 몰라도, 경쟁에 매몰돼 삐뚤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일보에도 없는 사건사고 정보를 슬쩍 내어준 경찰관의 친밀함을 오롯이 내 성실함의 보상이라 자부하면서도, 그의 성과는 같은 남성으로서 누리는 특혜의 산물이라 치부했다.


성실한 기자에게 마음을 더 내어주는 경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과를 세상에 자랑하기 위해 기자를 이용했다. 다른 기자들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그들의 선택지에 내가 있어야 했다.

주고받을 게 한톨도 없는 관계에서의 기자는 이방인이자 침략자일 뿐이었다.

결국 내가 얼마나 효용 가치가 높은 기자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지역신문 일간지의 힘이 적을수록 그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익숙해졌다.

의경과 짧은 눈짓으로 정문을 통과하고, 청소 아주머니와 가벼운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웠다.

어느 사무실에서 안 해도 그만인 수다를 떨다 배달원이 건넨 판촉용 녹즙에 빨대를 꽂아 물고 있노라면 내 스스로가 경찰인지 기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아빠 직업을 경찰로 착각했다는 어느 선배의 아들 이야기에 실소가 터져 나오면서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매일 아침 '리셋'되는 전쟁터에서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억지스러운 텐션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것은 나를 갉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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