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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총통부-중국의 백악관

by 안나


청나라는 태평천국의 난(1851–1864)을 진압하기 위해 서구열강을 끌어들여 진압에는 성공하지만, 그 이름도 유명한 애로우호 사건(실제로는 조작된 설정이라는 설이 있죠)으로 2차 아편전쟁이 발발합니다. 태평천국의 난, 13년 동안 이어진 내전으로 2천만 명 이상 사망, 남부 경제 기반 붕괴하고 국가 재정이 고갈되고, 증국번(曾国藩), 이홍장(李鸿章) 같은 지방군벌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죠. 양무운동(洋务运动)으로 이어진 부분적 근대화는 군사, 산업에만 치우친 절름발이 개혁으로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어요.


서구 열강의 침략과 아편전쟁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으로 휘청거리던 청나라에 1900년,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요. 반외세 운동이었던 의화단 사건에 청나라는 8개국 연합군을 끌어들이지만 오히려 역이용당하죠. 이때, 원명원(圆明园)이 파괴된 사건은 유명하죠. 지금도 원명원에 가면 그때, 폐허가 된 잔해를 고스란히 전시하며 잘못된 판단과 실패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어요.

Weixin Image_20251126102913_3475_9.jpg 베이징 원명원 - 1860년, 영.프 연합군에 의해 파괴

안 그래도 태평천국의 난으로 치명상을 입은 청나라는 급격히 쇠퇴하며 외부 제국주의 압력에 휘둘리게 됩니다. 쑨원의 신해혁명(1911)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근대 민족·계몽· 군인 세력의 연합 혁명이었습니다.

삼민주의(三民主义)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를 내세운 쑨원의 신해혁명(1911)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 성공하며 1912년 1월 1일, 남경에서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으로 선출됩니다.


1912년 2월 12일, 만주족 황제 푸이(溥儀) 6세가 퇴위하며 267년 청 왕조, 중국 2천 년 군주제는 끝이 나요. 청나라 멸망, 중화민국 수립이라는 중국 근대사의 새로운 막이 오른 곳이 난징총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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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총통부(南京总统府)는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건물 중 하나로,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까지, 여러 시대를 거치며 정치 중심지 역할을 했어요.

입장료가 무려 35위안(적당히 좀 받지)

IMG_6650.jpg 천하는 모두의 것이라는 쑨원의 글씨

청나라 말기(19세기말)에는 장쑤 총독부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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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이후 난징 임시정부 시절을 거쳐 쑨원은 1912년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으로 이곳에서 취임합니다. 국공내전 이후 국민정부(1927~1949), 장제스(蔣介石) 국민정부 수립 후 난징을 공식 수도로 지정, 총통부는 국가 행정 중심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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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건물(총통 집무실, 회의실, 접견실)과 부속 건물(장제스 등 정부 관료 숙소, 행정 사무 공간)

로 전통 궁궐 구조와 근대 서양식 관청 건물이 혼합된 형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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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도 예뻐 쉬기도 좋아요. 전 하필 햇볕 쨍쨍한 7월에 가서 더위에 지쳐 꼼꼼하게 다 둘러보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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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 총독부 → 신해혁명 임시정부 → 국민정부 중심지로 이어진 중국 근대 정치의 상징적 건물, 난징 총통부는 중국 4A급 관광지로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누구가 가서 보고 즐기는 곳이 되었지만 한때 중국의 백악관으로 불렸던 난징총통부에 중국의 시작이라는 역사가 스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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