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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미 Feb 04. 2024

진상손님 vs 진상손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 일은 내가 스무 살 중반, 대충 26살쯤으로 기억한다. 휴무에 책을 한 권 읽고 싶었고, 넓은 공간에서 광합성도 하면서 남이 내려준 커피가 마시고 싶어 주저 없이 카페로 갔다. 도착한 곳은 건물이 두 개나 된다는 대형 카페. 아무리 평일에 서울 외곽 대형 카페는 전세 낸 기분을 느낄 수 있다지만, 유난히 건물 한 동만 휑한 덕분에 한 테이블에 두 손님만 자리했다. 다른 동 사람들은 여기 건물이 하나 더 있는 걸 모르는 건지, 저 건물이 더 매력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횡재한 기분이다. 유난히 채광이 좋아 실눈도 떠본다.


 ”그렇다고 집을 나가!!!!!!!!!!!!!“


하. 내가 눈치가 너무 없었다. 카페 구경하느라, 휴무라 설렌 기분 만끽하느라 저 멀리 앉은 손님이 어떤 손님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부부나 불륜 관계로 보이지 않길래, 사무적인 일로 만난 사이겠거니 짐작했던 게 전부다. 둘 사이에 감정을 읽지 못했던 건 둘 사이에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폭풍전야에 내가 들어간 셈이었다.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건지, 내 존재를 알면서도 배려할 생각이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이어폰을 욱여넣고 볼륨을 키워본다. 그들 사이에 정적이 꽤 오래간다. 그때 나도 다른 손님들처럼 다른 건물로 자리를 옮겼어야 했다.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나는 책 한 페이지를 넘기질 못한다. 까만 건 글씨고 흰 건 종이고, 도저히 책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오래전 일이니 시간이 몇 분이나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감정 조절 잘하기로 소문난 INTJ인데, 나도 모르게, 정말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이미 내가 소리를 질렀다.


“전세 냈어요?!”


갓뎀.. 내 목소리가 이렇게 클 수도 있구나. 대화가 되지 않고 일방적인 남자와 침묵하는 여자이기에 둘 사이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엔 여자가 참아주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더 남자의 언성을 견디지 못한 듯하다. 남자는 나에게 짧게 “죄송합니다.” 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다시 그라데이션으로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황금 같은 휴무에, 더군다나 다른 카페라지만 진상 손님이라는 생각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소용 있었겠는가. 처음부터 그들의 안중엔 내가 없었고, 노려본들 내 눈만 아플 뿐. 직원에게 저 사람들 조용히 해달라고 좀 전해주세요, 부탁해 보지만 직원은 본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팔자 눈썹을 지어 보였다. 치기 어린 나는 ”씨끄럽다니까요? 전세냈냐구. 나가서 싸우라고오! “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목소리를 내고 이어폰을 뺐다가, 결국 내가 졌소 진절이나 자리를 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진상손님이라 생각했다. 그 카페의 직원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정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물론, 그들은 진상 손님이 맞고, 그 직원 역시 프로패셔널하지 못한 건 맞다. 문제는 나다. 나 또한 진상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직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터치하지 못했는지, 왜 다른 손님들이 건물 하나를 비워주었는지. 그저 그 카페에서 공감능력이 없던 건 나 하나였다. 누군가를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는 것이란 말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다른 손님들과 직원들은 헤아렸을 거다. 그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사람 없는 공간을 찾았는지, 집에 들어가지 않는 와이프를 어떤 마음으로 붙잡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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