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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미 Jan 28. 2024

바리스타의 환절기는

사람도 커피도 환절기는 설레고 어렵다.


 커피의 맛을 결정할 때 생두의 역할은 10% 남짓이다. 나머지는 로스팅과 추출에서 결정된다. 특히 추출에서 가장 큰 역할인 바리스타의 재량이 중요하다.

추출 시 물의 온도, 분쇄 시 입자 크기, 머신의 압력, 원두의 도징 양, 추출 시간 등등. 바리스타는 아침에 출근 후 기물을 제자리에 놓고 세팅을 시작한다.

어제와 오늘 아침의 날씨가 비슷하다면 크게 바뀔 게 없다. 온도와 습도가 비슷하니, 입자 크기를 조절하는 그라인더 세팅, 혹은 물 온도, 도징 양을 소수점 정도로만 조절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환절기라면?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바리스타는 환절기를 출근길에서보다 바 안에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우울한 사람은 계절을 빠르게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 나이는 들어가고 나는 이제 가게를 차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모아 둔 통장 잔고가 나의 커피 욕심을 채우지 못할걸 빤히 알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시선에서 바리스타는 좋아하는 일을 하니 여유 있어 보이는 직업 중 하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 시절 나는 출근길에 계절을 잘 느끼지 못했다.


 미리 일기 예보를 알았을 때에는 평균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겠지만, 미처 예보를 보지 못한 경우 어제와 오늘의 날씨가 급격하게 다를 때 마음이 조급해진다. 세팅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5분 남짓이니, 15분 동안 타이트하게 나의 모든 오감을 집중해 시계 분침과 싸워보다, 세팅이 끝나고 매장에 모든 불을 켜고 노래를 틀면, 그제야 내가 환절기도 느끼지 못했음을 체감한다.


  첫 손님이 오면 금방 사라질 생각이다. 보통 카페의 첫 손님은 단골손님이기 마련이다. 내가 얼마나 우울한지 계산하며 길이를 재는 것도 참 별로지 싶은데, 덕분에 생각이 환기된다. 참 간사한 사람 마음인지라, 방금까지 들었던 여유 없고 가엾게 느껴지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변한 계절이 딱 그 단골손님만큼 반갑게 변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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