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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2. 2024

2024년 한 해를 정리하며 템플스테이...

2024년 한해가 지나가고 있다. 올 한해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든 해였다. 많이 일이 있었고 심적갈등이 심했다. 하지만 그러던 올해도 지나가고 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지친 나를 위해 쉼이 필요했다. 그래서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했다. 전에 갔었는데 좋았던 기억이 나에게 있었다.  


급하게 예약을 했고 정해진 날이 다가왔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걸어올라갔다. 대로변을 걸어가다가 한 블럭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동네가 나타났다. 오래된 건물과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세월의 흔적으로 보여줬다. 쌓여져 있는 연탄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아직도 서울에 연탄을 때는 가구가 있구나! 우리는 자신이 보고 듣는 세상만 알지 그 이외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새삼 나 자신의 무지함에 부끄러워졌다.


그런 집들을 지나 신축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다. 바로 옆에 이다지도 큰 간극의 집이 존재함에 놀랍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이것이 우리네 세상임을 또한 받아들였다. 진흙속에 연꽃이 피듯이 상극은 함께 한다.


절입구 다다르니 현수막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반려동물 천도재 상담문의 한다는 광고였다. 반려동물이 많아지다 보니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천도재를 지내주나 보다. 반려동물을 데려다가 버리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죽은 뒤에도 그리워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인간은 그렇게 천사인 면과 악마인 면이 모두 있나보다.


절에 들어와서 둘러보고 있으니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사찰은 운치가 있었다. 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나를 잠재우는 듯했다.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무엇을 위해 그리 괴로워하고 전전긍긍하였던가? 모든 것이 다 부질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아무 생각도 없이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니 내가 빗물인지 빗물이 나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이 물아일체라는 것일까?


아주 멀리 온 것은 아니지만 많이 떨어진 곳 같이 느꼈다. 바로 옆에 천국이 있었는데 나는 뭐라고 그리 내 길만 가고 있었던 걸까? 길가에 핀 꽃도 보지 못하고 말이다. 찬찬히 둘러보면 행복은 곳곳에 있었는데 먼 곳만 바라보고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비가 와서 싱잉볼 수업을 하게 되었다. 난 가끔 자기전에 싱잉볼 영상을 틀어놓고 자곤 한다. 그러면 잠이 잘 온다. 직접보니 신기했다. 소리도 은은하니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 누워서 싱잉볼의 파장이 몸안에 들어오게 했다. 진행자가 내 옆에 와서 싱잉볼을 칠때마다 어떤 기운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암 치료에도 쓰인다고 하니 신기했다. 누워서 싱잉볼 소리를 듣고 파장을 느끼니 내 몸이 이완되면서 편안해져 왔다.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 있어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올라왔다. 강사가 나에게 중간에 안대를 씌워졌다. 내가 예민해서 그랬다고 나중에 설명해 줬다. 한명은 얼마나 편안한지 코를 골면서 잤다.


싱잉볼 수업을 마치고 공양간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전에 발우공양을 한 적이 있는데 경건하고 수양하는 기분이 들고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우공양은 하지 않았다. 딱 먹을 만큼만 떠와서 깨끗히 비웠다. 난 어릴때 음식을 참 많이 버렸다. 먹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나는 이렇게 덩치가 작은 모양이다. 엄마가 죽을때 버린 음식 다 먹고 죽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생각나면 난 엄청 음식 많이 먹고 죽어야 할 모양이다.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있는데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김포공항가는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이었다. 전세계 실시간 비행기 위치를 보여주고 앱을 깔아서 소리가 날때마다 어디서 온 비행기인지 찾아봤다. 지나가는 비행기를 클릭하면 어떤 항공사인지 편명과 출발지와 도착지 그리고 비행경로가 나타났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규칙적인 비행기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잤다.


새벽 5시에 일찍 일어났다. 스님의 가르침으로 종도 쳤다. 아침에 사람들과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했다. 외국인이 한명 있었는데 가부좌 자세를 잘 하지 못해서 방석 여러개를 엉덩이에 깔고 참여했다. 명상을 마치고 나는 혼자 남아서 108배를 시작했다. 올해 봄에 108배를 절에서 했는데 15분 정도 걸렸다. 기록을 깨고 싶은 마음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108배를 했다. 절을 다 끝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12분만에 완료하였다. 기록이 단축되었음에 기분이 좋았다. 이게 뭐라고 이리 목숨을 거냐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는 10분컷에 도전해 봐야 겠다.


아침을 먹고 후식을 먹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다. 스님이 남녀들의 자유로운 만남을 추구하는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를 추진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신도를 자녀분들 중에 괜찮은 남성들이 많은데 짝을 못 찾고 있다면서 말이다. 제목이 웃기기도 하고 재직증명서도 받으니 안심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한 커플은 스님의 소개로 만난 커플도 있었다. 참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후기를 정성스럽게 남기고 가지고 온 물건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이렇게 2024년이 지나간다. 난 또 이 순간을 언젠가 그리워 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는 또 속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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