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숨겨진 불꽃을 깨우다.

나의 스칼렛 오하라에게

by 윤슬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이야기를 만납니다. 그중에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향기 같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평생 가슴 한구석에 인장처럼 남는 이야기도 있지요. 제게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단순한 멜로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느껴질 만큼, 제게는 너무나도 격정적이고 가슴 아픈 한 여성의 대서사시로 기억됩니다.


원작의 무게를 뛰어넘은 찬란한 영상미


사실 저는 소설을 먼저 접했습니다. 텍스트가 주는 상상력의 힘은 대단해서, 보통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타라의 붉은 흙과 노을,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을 그대로 현실로 불러온 듯한 연기자들의 모습은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스칼렛이 된 비비안 리는, 제가 상상하던 고집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눈빛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습니다. 글자로만 읽던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경이로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욕망에 솔직했던 한 여성을 향한 고백


스칼렛 오하라는 결코 전형적인 현모양처나 순종적인 여인이 아닙니다. 소설 도입부에서 그녀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고 묘사되기도 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짜 매력은 외모보다도 그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로 남성들을 사로잡고, 자신이 유리한 입지를 점하는 데 거침이 없었던 그녀. 남의 눈치를 보느라 본심을 숨기던 그 시대의 다른 여성들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려 그 시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먼저 고백을 던질 줄 아는 용기, 그리고 애슐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홧김에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리는 그 불같은 성미는 때로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인간적입니다. 돈을 위해 여동생의 약혼자를 가로채고,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세 번이나 결혼을 감행하는 그녀를 보며, 저는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저는 스칼렛을 보며 제 본심을 들켜버린 것 같아 가슴이 떨렸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타인에게 추앙받고 싶고, 때로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이 숨어 있으니까요. 화려한 드레스를 탐하고 꾸미는 것에 진심이었던 그녀의 모습은, 사실 아름다움을 추종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었을까요?


전쟁보다 강인했던 생존의 본능


스칼렛의 진가는 평화로운 사교계가 아닌, 참혹한 전쟁터에서 드러납니다. 연애와 사교에만 관심 있던 철부지 소녀는 전쟁을 겪으며 악착같이 돈에 눈을 뜨게 됩니다.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 그녀는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직접 사업을 운영하며 삶을 일구어냅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그녀는 굉장히 진보적인 여성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외치며 붉은 흙을 움켜쥐던 그녀의 모습은, 절망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잡초 같은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닮은 꼴 연인, 래트 버틀러와 보내준 진심


그런 그녀 곁에는 그녀만큼이나 욕망에 솔직하고 대담했던 남자, 래트 버틀러가 있었습니다. 한때 저의 이상형이기도 했던 그는 검은 머리카락과 콧수염, 그리고 완벽한 슈트핏으로 제 마음을 설레게 했지요. 래트와 스칼렛은 서로가 서로의 거울 같은 존재였습니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스칼렛의 뒤늦은 깨달음으로 래트는 떠나버리지만, 저는 이 이야기의 끝이 비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그를 되찾겠다"며 결연히 서 있던 그녀의 뒷모습에서, 저는 그녀가 반드시 래트의 마음을 돌려놓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스칼렛은 그런 여자니까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쟁취해 내고야 마는 열정의 화신이니까요.


나만의 '타라'를 꿈꾸며


저는 이제 스칼렛 같은 여성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보다, 제 삶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싶습니다. 때로는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을지라도, 제 욕망에 솔직하고 싶습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고, 전쟁 같은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끈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는 사람.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아내고 결국 살아남아 웃어 보이는 사람. 저는 스칼렛 오하라에게서 그 뜨거운 생존의 기술을 배웠습니다.


오늘도 제 안의 스칼렛이 속삭입니다. "그래,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야.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 내 삶을 찬란하게 꽃 피울 거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자신만의 타라를 지키고 있는 뜨거운 스칼렛 한 명쯤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함께 그녀처럼 생동감 넘치게, 그리고 당당하게 내일의 태양을 맞이해 보아요.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나와 닮은 빨간 머리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