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나를 돌아보지 않아

밀란 쿤데라 『정체성』이 건드린 솔직한 마음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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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나를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아!”


해변을 걷던 샹탈은 문득 자신이 더 이상 남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합니다. 누군가는 이 문장을 허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누군가는 철없는 투정처럼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이 놀라울 만큼 정직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존재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단지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다른 이의 관심을 유혹하고 싶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직도 나는 살아 있고, 아직도 누군가의 눈에 반짝이는 존재일 수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에 가깝습니다. 샹탈의 말은 그래서 얕은 허영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법한 깊은 불안과 욕망을 건드립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있을까요?


우리는 자주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고, 남의 평가에 자기 가치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배웁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고 해서 늘 쉽게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혼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누군가의 눈빛과 반응을 통해 지금의 나를 확인합니다. 내가 오늘 괜찮아 보이는지, 여전히 따뜻한 사람인지, 아직 매력적인 사람인지조차도 사실은 어느 정도 타인의 반응 속에서 체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샹탈의 고백은 특별하면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사람일까?”
“세상은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입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감각의 슬픔


샹탈이 슬퍼한 것은 단순히 젊음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투명해지고 있다는 감각이었을 것입니다.


젊고 아름다울 때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선을 받습니다. 그 시선은 때로 부담스럽고 피곤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직 세계 한복판에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시선이 멈춥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습니다. 아무도 내 존재에 특별히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때 밀려오는 감정은 단순한 서운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에 가깝습니다. 나는 분명 여기 있는데, 세상은 더 이상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감각 말입니다.


나이 듦의 공포는 어쩌면 여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의 주름이 늘어나고 몸의 선이 바뀌는 것보다, 세상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장마르크의 편지와 샹탈의 변화


샹탈의 연인 장마르크는 그런 그녀를 보고 몰래 편지를 씁니다. 어떤 남자가 샹탈을 남몰래 좋아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당신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샹탈은 그 편지를 받으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상상, 누군가 자신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감각이 그녀를 다시 깨어나게 합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여성성이 다시 살아납니다.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


이 감각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샹탈이 편지에 들뜨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다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질투라는 아이러니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샹탈이 그런 반응을 보이자 장마르크는 오히려 질투를 느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 정작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샹탈은 분명 장마르크 곁에 있지만, 그녀를 다시 빛나게 만드는 것은 장마르크의 진짜 존재가 아니라 익명의 누군가가 보낸 편지입니다. 장마르크는 자신이 직접 쓴 편지에 반응하는 샹탈을 보며 묘한 소외감과 질투를 느낍니다.


이 장면은 사랑의 복잡함을 너무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연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연인 말고도 세상으로부터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연인의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면 가장 아름답겠지만, 현실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아내이기 전에, 누군가의 남편이기 전에, 누군가의 연인이기 전에 나는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여전히 타인에게 매력적인 존재이고 싶어 합니다. 그 욕망은 생각보다 본능적입니다.


말하지 못할 뿐,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도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기 어려울 것입니다.


“요즘은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아.”


이 말은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울을 더 자주 들여다보거나, 전보다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쓰거나, 운동을 시작하거나, 사진 속 예전 얼굴을 오래 바라봅니다. 혹은 반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이제 그런 것에 관심 없다고, 나이는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라고, 외모나 시선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정말 우리는 그런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까요?


누군가에게 여전히 좋은 인상을 주고 싶고, 여전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여전히 이성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보편적입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솔직하게 말하고, 어떤 사람은 끝내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나이 듦의 공포는 외모보다 존재감의 문제입니다.


나이 듦 자체가 불행은 아닙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르고, 젊음은 누구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젊음이 지나가는 사실보다, 그와 함께 세상 안에서의 내 위치가 달라진다는 점일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종종 사회에서 강력한 자산처럼 작동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 무기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무기가 무뎌질 때 느끼는 상실감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특히 외모와 젊음이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예전 같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한때 누렸던 어떤 세계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가벼운 허영이라기보다 존재감이 흐려지는 데서 오는 불안에 더 가깝습니다.


샹탈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저는 샹탈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정직함이 고맙기까지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감추고 외면하는 마음을 그녀는 너무도 정확하게 말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멋지게 차려입고 나갔을 때 누군가의 시선이 잠시 머무는 기분, 오늘따라 괜찮아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작은 기쁨, 여전히 나는 매력적일 수 있다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이것은 여성만의 감정도 아니고, 특정한 누군가만의 욕망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여전히 매력적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너무 쉽게 비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단지 얕고 가벼운 허영이 아닙니다. 때로는 삶에 대한 애착이고, 아직 꺼지지 않은 생의 감각이며,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는 확인이기도 합니다.


“나 아직 살아 있구나.”

그 마음은 생각보다 절실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정체성』은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시선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의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무도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는 날, 나는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들뜨는 샹탈, 그런 샹탈을 보며 질투와 소외감을 느끼는 장마르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순을 통해 이 소설은 아주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아무리 독립적이고 단단한 사람이라 해도,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따뜻하게 비추는 순간 조금은 더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그 시선이 사라질 때 작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매력적이고 싶은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에게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허함을 느낀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누군가의 눈에 빛나고 싶어 하는 마음,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확인받고 싶은 마음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생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샹탈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애써 숨기고 외면하던 마음을 너무도 정확하게 대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인정하게 됩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살아나는 순간이 있었고,

그 시선이 사라질 때 작게 흔들린 적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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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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